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5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57)
  • 경남일보
  • 승인 2023.11.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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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지리산 중산리에서 열린 천상병문학제 떠올리다(2)
거듭 말하거니와 천상병문학제는 지리산 중산리에서 열렸는데 천상병은 산청이나 지리산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산청지역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만년에나마 산청지역에 귀촌해 살지도 않았다. 절대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산청땅에서 문학제를 연 것은 그만큼 문학을 보고 그 문학의 의미를 찾아서 이룩한 작품 중심주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추진한 주최자들의 문학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이를 알아차리고 처음부터 지원에 나선 필자는 「귀천 시비」를 써서 격려했다.



“<귀천 시비> 서고 난 뒤

천왕봉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동켠으로 앉으면

머얼리 남강가 기생이 나왔다가

들어간 흔적 살피며 지루 덜어내고



눈을 더 아래로 다잡을 땐

붓대롱에 목화씨 세 낱 넣어갖고 와

세상에 퍼뜨린 일

그 일의 순서를 몇 번씩 풀어보는데



아니다 아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천석들이 종이지

수염 꼿꼿 붙이고 사는 선비

팔자 걸음으로 가는 정신이지



거기 늘 눈 내리고 비 내리다가 사태져

쓸리는 양지짝

어슬렁거리던 시인 천상병의

<귀천 시비> 섰다.



서고 난 뒤

이슬과 노을

구름과 하늘이 제 이름으로 걸어다니고



천왕봉이 제 이름 걸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이 시는 천상병이 쓴 「귀천(歸天)」이라는 시를 시비로 세우고 난 뒤 천왕봉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왕봉은 멀리 진주 남강의 논개혼을 떠올리고 가까이는 문익점의 목화씨를 대롱에 넣어가지고 와서 조선의 의생활(민복)을 갖추어 준 일을 떠올리며 남명 조식의 시에서 읊은 “하늘이 울어도 쉽게 울지 않는다는” 선비정신을 일깨워 낸다. 필자는 이 시를 쓰고 난 뒤 초기 천상병문학제 때 발표하자 문학상 제1회 수상자 문정희 시인은 “천왕봉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는 구절이 주는 의인화가 멋지다. 아름다운 지리산 벼랑과 계곡이 자아내는 정경이 어느새 천상병의 ‘귀천’과 무염한 시심을 대신해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제2회 수상자 이태수 시인(대구)은 시상식에서 필자의 이 「귀천 시비」를 낭송하여 박수를 크게 받았다.

지리산에는 「귀천 시비」가 있고 서울 인사동에는 카페 ‘귀천’이 있다. 천상병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는 시를 썼는데 아내 목여사가 운영하는 카페 ‘귀천’을 그렇게 불렀다. “내 아내가 경영하는 카페/ 그 이름은 ‘귀천’이라 하고/ 앉을 의자가 열다섯 석밖에 없는/ 세계에서도/제일 작은 카페”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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