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순수(純粹)’의 결국
[경일춘추]‘순수(純粹)’의 결국
  • 경남일보
  • 승인 2023.12.03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통영 만석꾼 집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은, 할머니의 등에 업혀 금지옥엽으로 자랐다. “스물 난 새파란 소년과수로 춘향이의 정절을 고시란이 지켜온 할머니는 나의 마음까지도 약하고 가늘게만 기루워 주셨다. ‘집·1’ 고 쓴 시의 내용처럼, 시인은 자기를 때리고 괴롭히던 동네 친구들과 주먹다짐 한 번 못 해보고 사춘기를 맞았다. 꽃의 시인이자 대한민국 순수시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1922~2004) 시인 이야기다.

시인은 연약하고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던 듯하다. 경북대에서 영남대로 이직했을 때, 새 연구실 자리가 22층 건물의 12층이라, 창밖을 내다보고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만 “아…!” 하고 주저앉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생활인으로서 허약했던 시인의 면모를 설명해주는 일화 중 하나다. 1942년 일본 유학시절 동포 학생들과 총독정치 비판에 동참했다가 불경죄로 경찰서에 7개월간 유치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시인은 아주 초보적인 고문조차 견뎌내지 못했음을 고백한 바 있다.

후일 김춘수가 시적 페르소나로서 신라의 처용(處容)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은 역신(疫神)과 아내의 간통 장면을 목도하고도 춤추고 노래하며 의연히 그 자리를 물러남으로써 역신을 감복시킨 신화적 존재다. 김춘수는 시집 ‘타령조·기타(1969)’, ‘처용(1974)’, 김춘수 시선(1976)에 총 23수의 처용 연작시를 수록했다.

시작 노트에서 그는 ‘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로 처용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역사의 폭력 앞에서도 “천진무구하게 어린이의 눈빛처럼” 순수시의 위상을 정립하려 애썼다. 하여 그의 시에서 처용은 언제나 “그대 순결(純潔)은/ 형(形)이 좀 틀어지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대는 나의 노래 나의 춤이다 -처용삼장” 노래하며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1988년 전두환 대통령의 퇴임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춘수 시인의 헌시가 7분여간 낭송됐다. 이른바 20세기판 용비어천가였다. 후일 시인은 이 일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1980년 말 시인이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을 때부터 문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대한민국 ‘순수시’의 결국이 너무나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9일이 김춘수 시인의 19주기였다. 극장가에서는 제5공화국의 비화를 다룬 영화가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낳고 있다. 두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있는 듯해 오랜만에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