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 자라는 한해살이들,
짧은 목숨도 채우지 못하고
오가는 발길에 밟히거나 바퀴에 뭉개진다
풀의 중심은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쓸모없는 풀의 목을 잡아채는 찰나
쓱, 손을 베였다
선명한 핏방울,
풀잎은 칼을 어디에 숨겼을까
풀이 살아남는 방식은
뿌리를 단단히 묻는 법
바람에
흔들리며 넘어지며 더 많은 씨를 뿌린다
손에 든 풀물
박박 문질러도 빠지지 않는다
풀의 피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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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서는 저 나약한 풀들도 비밀 병기가 있다.
날카로움을 감추지 않고 저항한다.
무심코 잡아당긴 풀의 날에 베인 손가락의 비명.
핏방울을 보고서야 서로의 생존을 이해하고
풀의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된다.
상처의 풀냄새에 베인 피 냄새가 어쩌면
공존을 당부하는 깊은 말씀일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사실은 하루가 지났는데 사람들은 일 년이 지났다고 한다.
묵고 지친 것들을 죄다 정리하고 새로운 것들을 각오한다.
길섶 같은 삶의 언저리에 새 생장을 주문한다.
더러는 바람에 흔들리고 밟히며 일그러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 다짐은 신선하고 대단하다.
시작되는 한 해가 같이 사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
모서리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의 날에
베이지 않는 그런 날들만이면 좋겠다.
이 해가 끝날 때까지 약조의 말씀이 유효하면 더욱 좋겠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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