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49]전남 해남 도솔암 눈꽃여행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49]전남 해남 도솔암 눈꽃여행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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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끝과 하늘 끝이 만나는 곳에 핀 연꽃같은 암자
 
달마산에서 바라본 해남 앞 바다.
◇눈 쌓인 백팔계단을 걸으며 씻은 번뇌

도솔암이란 이름을 가진 암자는 전국에 수없이 많다. 지리산 7암자 중 하나인 도솔암, 선운산 도솔암, 여수 도솔암, 태백산 도솔암, 달마산 도솔암 등 모두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 가파른 고행 끝에 만날 수 있는 작으면서도 아름다운 암자는 달마산 도솔암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솔암은 도솔천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절이다. 도솔천은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천상의 이상향을 일컫는다. 인간이 가서 살고 싶어 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에 지어놓은 암자가 도솔암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명품 걷기클럽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와 도솔암 트레킹(걷기 여행)을 떠났다. 버스로 3시간여를 달려 미황사에 도착하자 밤새 내린 눈이 우리를 맞이했다. 필자 일행은 눈 덮인 미황사와 달마산에 환호성으로 화답을 했다. 달마고도는 4코스로 이뤄져 있으며 총길이 17.68㎞이다. 2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2017년 11월 18일 개통한 달마고도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닦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 상태로 선인들이 걸었던 옛길을 복원한 친환경 둘레길이다. 달마고도 1코스 출가길(2.72㎞), 2코스 수행길(4.3㎞), 3코스 고행길(5.63㎞), 4코스 해탈길(5.03㎞) 중 필자 일행이 걸은 코스는 4코스 해탈길을 역주행해 도솔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마봉리주차장까지 내려오는 6.45㎞ 거리다.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달마고도 4코스인 해탈길은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코스다. 미황사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이어진 108계단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하얗게 덮인 눈 계단을 걸으니 금세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눈 덮인 미황사와 달마산 공룡능선의 비경을 한 폭의 수묵화로 그려놓은 겨울, 겨울이 이처럼 위대한 화가임을 새삼 인지한 순간이었다.

 
벼랑 위에 둥지튼 도솔암.
◇사람의 손으로만 일군 달마고도 눈꽃길

미황사에서 시작되는 달마고도 4코스, 눈 쌓인 해탈길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눈꽃여행이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른 적은 없었지만 아마 눈 덮인 숲길을 걸을 때와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 지역에는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눈인지라 일행은 설경을 만끽하면서 걸었다. 눈 쌓인 나무를 흔들어 눈 폭탄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길섶 쌓인 눈 위에 벌렁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다.

눈 쌓인 숲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가자 돌너덜이 나타났다. 돌의 색깔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너덜길을 건너자 이정표 하나가 서 있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능선으로 가는 도솔암길을 선택해서 떠났고 뒤처져 걷던 필자 일행은 삼나무 숲을 지나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두 길 모두 도솔암의 거리는 2㎞지만 능선길은 엄청 가파른 길을 올라가 바위 능선을 타고 가야하고, 필자가 선택한 삼나무숲길은 평탄한 길을 따라가다가 삼나무숲 삼거리에서 250m 정도만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도솔암에 닿을 수 있는 코스다.

 
눈 덮인 돌너덜.
눈폭탄을 즐기는 회원들.
눈꽃을 보며 걸으니 어른들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지는 것 같았다. 일행들 모두 어린이가 된 듯 하얀 웃음을 터트리거나 환호성을 내지르며 눈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삼나무숲 삼거리에 닿았다. 도솔암까지 25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완전 수직 절벽처럼 가파른 길이었다. 눈 덮인 돌계단을 치올라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목적지인 도솔암이 지척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힘든 것도 잊은 채 밧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도솔암이 보이는 삼성각에 이르렀을 때,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낭떠러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한 자리를 잡은 도솔암은 절경을 넘어서 화엄의 경지에 이른 한 송이 꽃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도솔암, 달마산 끝과 하늘의 끝이 만나는 곳인 도솔천에 봉오리를 맺은 연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발을 맞으며 돌길을 더듬듯이 걸어서 도착한 도솔암. 늙은 팽나무 한 그루가 암자를 지키고 있었다. 작고 아담해 더욱 성스럽게 보였다. 도솔암서 바라본 달마산 능선과 삼성각, 산 아래 세상을 휘날리는 눈송이가 더욱 절경으로 그려놓았다. 도솔암 주지 법조스님은 뵙지 못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팽나무, 단아한 법당이 불립문자로 필자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솔암에서 바라본 눈덮인 삼성각.
◇가슴에 담아온 환상적인 도솔암

행복은 마음에 있고 천국(도솔천)은 가슴에 있다고 한다. 바람 세고,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도솔암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극한의 유폐와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유폐와 은둔이 자발적일 때는 고통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행복과 달관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도솔암을 내려올 즈음, 때마침 능선을 타고 온 일행들도 도솔암에 도착했다. 엄청 힘들었다고 말을 하면서도 능선에서 바라본 해남 바다와 들녘이 정말 환상적이었다며 자랑을 했다. 편하게 도솔암에 닿은 필자를 오히려 부럽게 만들었다.

미끄럽고 가파른 눈길을 내려오는 동안 혹시나 사고가 일어날까 봐 조심해서 발걸음을 떼다 보니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을 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삼나무숲 삼거리까지 되돌아왔다. 마봉리주차장으로 내려와 송호마을에서 갈치조림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햇살이 내리쬐는 송호해수욕장을 거닐면서 확 트인 겨울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의 주인이 된다면(隨處作主), 우리가 사는 곳 모두가 참되고 아름다운 곳이다(立處皆眞)’라고 한 임제선사의 말씀이 파도소리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눈을 머리에 인 미황사 일주문.
도솔암.
송호해수욕장.
눈 덮인 해탈길을 걷는 회원들.
눈 덮인 해탈길을 걷는 회원들.
눈 덮인 미황사와 달마산.
눈 덮인 미황사 108계단.
도솔암을 지키는 섬팽나무.
도솔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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