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당신의 가격
[경일칼럼]당신의 가격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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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헌 변호사
이송헌 변호사


당신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 아니, 있긴 하겠지만 당신과 무관하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 있어서는 당신이 가장 소중하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주인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인생을 살아주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타인은 나의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인 당신은 얼마짜리일까. 사고로 당신이 죽는다면 가해자는 유족에게 얼마를 배상해야 할까. 우리 법원은 대략 사람의 목숨 값을 5억5000만원 정도를 최대로 하고 있다(2023년 기준, 청년·무직자일 경우). 위자료 최대 1억원 정도 추가해 지급하므로 대략 6억5000만원 정도 수준이 된다. 지금의 당신을 현금으로 청산하면 위와 같다. 위 금액을 넘어서서 받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교통사고나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 또는 고의로 살인을 당한 경우에도 손해배상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손해배상소송은 피해자 측의 과실을 고려해 과실상계(감액)를 한다.

2013년 4월 미국 경찰에 의해 한국계 미국인 25세 대니얼 정이 체포됐다가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대학 동료 8명과 함께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집에서 마약류인 엑스터시와 각종 불법 무기가 발견된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은 그 집에 함께 있던 대니얼을 체포했고, 감방에 갇혔다.

문제는 그때 발생한다. 경찰은 대니얼이 혐의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혐의 통보를 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대니얼을 석방하지 않은 것이다. 대니얼은 4일간 불법 감금됐다. 당시 대니얼의 인터뷰를 과거 신문 기사로 확인해 보면 그는 너무 배가 고파 오줌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고함치며 문을 계속 발로 찼고, 신발 끈을 감방 문틈으로 넣어서 밖에서 그것을 볼 수 있게 시도했다 한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자살시도까지 하다가 4일 만에 풀려난 대니얼은 미국 법무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법무부는 대니얼 정과 410만 달러에 합의했다고 한다. 현재 가치로 53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1일 감금당 10억원이 넘는다.

우리 대한민국이라면 어떨까? 4일치 일당(학생이므로 1일당 10만원 계산될 듯) 40만원에 위자료(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금) 1000만원을 더하고, 치료비 명목으로 실제 지출된 돈(100만원 정도)만 주면 될 듯 하다. 합계 1140만원 정도일거다(하루 일당을 100만원으로 해도 1500만원). 그리고 정치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위로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며 선전용 사진을 찍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다. 일부 입법론적으로 받아들인 듯이 보이는 경우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고의범죄에 의해 사망해도 위자료가 1억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무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어도 그 위자료 액수는 최대 1억원이어서 정신적 고통을 위자(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어떠한 판사님도 위자료의 액수를 1억원을 초과해 선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기간 동안.

필자가 미국의 법률제도가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사람의 신체나 생명의 완전성을 해하는 범죄 또는 과실에 의한 손해배상 등의 경우 지나치게 가볍게 처벌하고, 가볍게 배상하고 마무리 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점을 말해 보고 싶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대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잃은 부모가 택시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사건에서 부모는 아들을 잃었지만, 손해배상금은 이 글에서 처음에 언급한 금액을 넘어서지 못했고, 대학을 다니던 아들은 대학졸업자로서의 월급이 아니라 고졸자로서의 장래 급여를 인정받았으며, 과실상계도 당했다. 우리의 손해배상제도는 조금 더 미국스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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