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낯선 여인들을 잠시 만났다
옷고름 풀어 헤치며 하얀 속살을 드러낸
눈이 맑은 숫처녀들
수만 개의 인두를 흰 꽃불 속에서 달구어
내 온몸을 지져 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고문이
이렇게 눈부신 낙형烙刑이 있다는 것을
사월에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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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벚꽃이 만개하다.
겨우내 죽은 듯한 몸뚱이 어디에다 생명을 숨겨 놓았는지
가지마다 꽃들로 환하다.
처녀의 속살같이 눈부시기도 하고 새댁의 수줍음 같이
부끄러이 온 동네를 채웠다.
따뜻한 봄볕이 인두가 되어 뜨거운 자국마다 꽃이 되었고
고문의 눈부신 낙형도 아름다움이 된다는 걸
사월에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시인의 맑은 서정이 꽃보다 환하다.
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에도 지구는 자전과 공전이 필요했고
먼 우주의 중력과 파장이 필경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광합성이 한참인 봄,
그 전령 같은 벚꽃의 탄생이
그리고 그 이력이 세상 창조의 조화 속에 피고 맺는다.
자연이 꽃 한 송이 일구는 일도 혼자만의 몫이 아니고
지탱하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도 모두 세상의 몫임을
사월에서야 새삼 깨닫는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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