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무상백성일인(無傷百姓一人)
[천왕봉]무상백성일인(無傷百姓一人)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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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위원
명(明) 말기에 관료들의 부패, 당쟁, 환관(宦官) 전횡 등으로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청(淸)의 침입으로 국력이 쇠퇴했다. 청의 군대가 명을 침략할 때 이자성이 1644년에 북경(北京)으로 쳐들어와 쉽게 함락됐다. 명 관리들이 이자성의 반란군에 가담하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 1628∼1644)는 황후와 함께 만세산(萬歲山)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역사 기록에 많이 사용된 연호 숭정제는 통찰력이 있고, 신중, 주도면밀한 부지런한 장점을 가졌다. 업무 능력, 근면함은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몇 명 없었지만 황제의 죽음과 함께 명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숭정제는 성질이 급하고, 의심이 많고, 독단적인 단점이 큰 문제였다. 그로 인한 여러 실책을 저질러 결국 멸망했다. 잘못과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는 바로 목을 베는 등 신하들에게 결코 기회를 주지 않아 실패하면 바로 숙청이 다반사였다. 모든 일은 성공, 실패가 있고, 전쟁도 승리와 패배를 감안 않고, 한 번의 실수도 용서를 못하는 병가상사(兵家常事)가 없었다.

▶숭정제는 “적에게 넘어가 찢어질지라도 백성은 한 사람도 상하게 말라”라는 ‘무상백성일인(無傷百姓一人, 백성을 아끼는 임금 의지)’글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백성에 화가 미치지 않도록 황제로서 애민의 뜻을 표현했다. 하나 국가경영을 책임진 지도자로서 너무 과신, 작은 잘못도 포용력이 없는 ‘아집과 고집의 재승덕박(才勝德薄, 재주는 많은데 덕 부족)’이 화를 자초했다. 이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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