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성 시조집 ‘메께라’…4·3 테마 해원상생굿 시조에 담아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4·3 테마 해원상생굿 시조에 담아
  • 백지영
  • 승인 2024.04.02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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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도 바닷새도 사월엔 노래를 접네/피멍 든 동백 꽃잎 검게 지는 섬의 봄날/삽시에 터지는 울음/이른 장마 예보하네//사라지는 이름들과 살아지는 빗돌 사이/술 한 잔 받지 못한 봉인된 산담 앞에/그 누가 하얀 삘기꽃/몰래 피우고 갔을까//한라산 고사리는 제사상에 올리지 마라/핏물과 추깃물에 살진 그 몸 씻으란 듯/하늘도 정수리 위로/동이물을 쏟고 있네”(시조 ‘고사리장마·3’)

남해 출신 임채성 시인이 제주 4·3을 테마로 한 네 번째 시조집 ‘메께라’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 임 시인은 제주 4·3의 역사적 서정과 씻김의 해원상생굿을 노래한다. 시집 제목으로 쓰인 ‘메께라’는 ‘남의 말이나 행동에 놀라거나 기가 막힐 때 내는 감탄사’로서 제주 지역 방언이다.

해원상생굿은 죽은 자를 위한 제례이자 살아남은 자와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치유하는 생명의 굿, 상생의 굿으로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아픔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람과 자연을 치유하고 보듬는 행위를 뜻한다.

시집은 해방공간의 제주 공동체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4·3항쟁의 주체뿐만 아니라 이와 분리할 수 없는 제주의 자연과 일상에 대한 순례·답사의 시적 수행으로 이뤄져 있다. 시집 한 권 전체를 4·3의 역사적 서정에 초점을 맞춘 시인은 4·3 무렵 수난과 항쟁의 도정에서 제주 민중들의 희생을 향한 애도의 심상을 중심으로 4·3 영령들을 위한 굿판에서 소용될 축문을 시 쓰기로 수행한다.

눈여겨볼 것은 섬의 상처를 응시·위무·치유하는 시의 감응력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씻김의 해원상생굿 그 축문을 외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 소망은 시집을 관통하는 시적 재현으로 나타난다.

“죽어서 할 참회라면 살아서 진혼하라//산과 들 다 태우던 불놀이를 멈춘 섬이//지노귀 축문을 외며/ 꽃상여를 메고 간다”(시조 ‘제주 동백’). 4·3항쟁의 영령들에 대한 축문으로 쓰인 시는 이승에서 봄의 새 생명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해원의 굿판은 “시르죽은 잿불마저 자지러진 액막이굿판”(시조 ‘쥐불놀이’)은 물론, 반생명적 폭력에 대한 “참회의 굿판”(시조 ‘서우봉 휘파람새’)으로서 “광기와/분노를 사르는/장엄한 진혼 축제”(시조 ‘새별오름 방애불’)로 이어진다.

현기영 소설가는 추천사를 통해 “시인 임채성은 화산섬의 대지에 엎드려 땅속의 웅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며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혔어도 원한 때문에 결코 삭지 않고 푸른 피로 살아있는 수만 영혼들의 음성”이라고 했다. 이어 “그 음성을 들으면서 시인은 절실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며 “수만 영령의 그 원한을 달래면서, 그 원한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간절한 진혼곡”이라고 전했다.

한편 임 시인은 남해 창선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출향 작가다. 2008년 서울신문 신춘 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왼바라기’·‘야생의 족보’, 시선집 ‘지 에이 피’를 펴낸 바 있다. 천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21세기시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요아침. 138쪽. 1만 원.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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