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난리 뽕짝과 헬기 뽕짝
[경일포럼]난리 뽕짝과 헬기 뽕짝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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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총선 유세전이 한창이다. 정권심판이란 대의명분을 쟁점으로 내세운 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당이 명품 백 정치공작에 딱 걸려들어 정국의 주도권에 동력을 잃고 휘청대고 있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의 돌발 사태가 생겼다. 이종섭 호주 대사의 일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야당은 이것을 두고, 호재를 넘어 횡재로 삼았으니, 판세는 파죽지세와 같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봄이 느껴지는 이즈음에 온갖 말들의 꽃을 피우고 있다.

주지하듯이, 정치는 일종의 말싸움에서 비롯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말싸움 공방전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정치를 개같이 하고 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그렇다고 하자. 이재명 야당 대표는 유세 현장에서 이런 말도 했다. 경찰은 야당 대표가 목에 칼로 찔린 현장을 한 시간도 안 돼 물청소를 하더니, 배현진 여당 의원의 경미한 피습엔 폴리스라인을 치고 과학수사를 한다고 난리 뽕짝을 쳤다. 이에 대해 배현진 의원은 ‘그럼, 헬기 뽕짝은?’ 하면서 응수했다. 물론 쓴웃음을 짓고 살짝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정치 언어가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차별적인 말은 안 된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다고 해도.

이재명 대표는 잇달아 차별적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경기 북도를 강원 서도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하더니, 의붓아버지와 계모 운운한 바 있다. 지역 차별, 재혼 가정에 대한 편견적 차별에 이어 ‘뽕짝’이란 멸칭을 사용한 것이다. 뽕짝이 문화적으로 저급에 불과하다는 뜻이 무의식에 감추어져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올 수가 있나? 트로트에 종사하는 대중예술가들의 수가 적지 않고, 또 이를 향유하는 이들의 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피아노 건반에다 음도 맞지 않게 난리 소나타를 치더니…. 이 대표가 이런 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난리 뽕짝이란 표현이 차별적 말인 것은 분명하다.

4년 전에도 지금의 야당은 소위 한일전을 표방해 재미를 크게 보았다. 유령처럼 음습하게 돌아다녀야 할 조어 ‘토착왜구’는 공공연한 말의 폭탄이 되었다. 선거에서 최악의 승리는 인종주의를 악용해 승리하는 것. 이것은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악용과 이용이 의미론적으로 반대말이지만, 문맥에서는 같은 말이다. 내가 유리하면 이용이요, 남이 유리하면 악용이다. 미국은 최근에 블랙리스트조차 인종주의, 혹은 이와 유사 개념으로 간주하고 있다. 야당은 이번 총선을 ‘신한일전’으로 규정한 바 있었다. 중국에 대해 두 손을 모아 ‘셰셰’ 하면서 비굴한 모습을 보인 것과 반대다.

말들이 잡음처럼 들리는 이 봄날에, 나는 잡음이 소리 없는 공허를 덮어버리는 소리 나는 공허이며, 이와 반대로 참된 언어야말로 고요한 침묵의 표면 위에 드리워진 소리 나는 충만함이라고 생각해본다.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시 ‘침묵’에 이런 표현이 있다. 시가 아닌 산문의 형태로 인용해본다. “추억과 희망, 우리의 크고 작은 거짓 언어들. 외치려 해도 목구멍에서 외침은 사라지고, 수많은 침묵이 입 다문 그곳으로, 또 다른 침묵이 되어 튀어나간다.” 다중의 유권자는 침묵한다. 투표하는 행위는 또 다른 침묵이다. 외침이 입을 꾹 다문 데서 침묵이 또 다른 형태의 침묵으로 튀어나간 소리의 투표 행위가 바로 참된 언어일 터. 침묵은 잡음 같은 소리의 말을 비우면서, 잘 선택된 말의 소리로 빈 세상을 채우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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