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잔인한 달 4월
[천왕봉]잔인한 달 4월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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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생기 없는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죽음과 폐허의 대지가 된 서유럽. 전쟁이 끝나고, 그 대지에 꽃을 피우고, 생명을 소생시키는 4월이 왔음에도 재생이 불가능한 절망 상태에 있는 서유럽을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로 인해 4월은 우리에게도, 전 세계인에게도 ‘잔인한 달’로 회자되고 있다.

▶우리의 지방, 특히 농촌도시에게도 4월은 너무나 잔인한 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지방 실태가 ‘황무지’ 시 구절에 나오는 서유럽 죽음의 대지 상황과 너무나 맞아 떨어져 소름이다. 4년 마다 치러지는 4월 총선 때에는 정치권은 죽은 땅(농촌)에 라일락(번영)을 키워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 지방의 농촌은 과거 번영했던 추억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욕정(욕망)을 갖게 된다.

▶4월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그 약속을 망각한다. 이후에는 지방의 농촌은 갈수록 피폐·황폐·황무지화가 되고있는데도 겨우 생존만 유지할 수 있도록 마른 뿌리(희망고문)만 남겨 둘 뿐이다. 그렇듯 4월은 지방의 농촌에 공허한 추억과 덧없는 욕망을 일깨워 치명적 상처만 덧나게 하기에 더 잔인하다.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고문을 가하기에 더 잔인한 것이다. 정영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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