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봄의 국경
[경일춘추]봄의 국경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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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영 시인
유승영 시인


갇혀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봄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봄이 왔다. 지난 봄에 비하면 평화로운 봄이다. 산수유가 목련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어나고 정촌 뿌리산단로에서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갇혀있던 봄을 꺼내어 본다. 봄은 언제나 새롭고 분주하지만 쓰다만 글을 다시 꺼내 보는 계절이어서 더욱 좋다. 때 아닌 눈을 보기도 하고 찬 겨울의 나머지 바람을 맛보기도 하고 좌우지간 봄은 색다르다. 가만히 가만히 봄 들판에 앉아 쑥을 캤다. 햇살을 등지고 한참 동안 쑥을 캤다.

겨울을 견뎌낸 것은 쑥과 냉이만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들이 이리저리 봄을 맞고… 누군가 옮겨다 놓은 책상이며 쓰다 버려진 소쿠리며 어쩌지 못한 것들이 봄 햇살을 듬뿍 맞고 있다.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온 쑥이며 냉이며 봄꽃들과 눈을 맞추는 봄이다. 도다리 대신에 가자미를 풀어서 쑥국을 끓여보았다. 처음 끓이는 가자미 쑥국이 제법 맛있다.

마음 놓고 입원을 하고 마음 놓고 감기에 걸리고 보란 듯이 봄을 맞이한다. 갇혀있었다면 발견할 수 없었을 봄이 새롭기만 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냈던 겨울을 지나 땡볕의 여름 박람회를 지나 포항을 지나고 경산을 지나고 전자책 교육에 온 마음을 쏟았던 계절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조바심과 쫓기듯 퇴근을 하고 뒤척이던 밤잠의 계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견뎌냄으로 완성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고 통과되지는 않아. 그렇게 피고 지는 것이 계절이야. 내가 나에게 공을 들여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거지. 하얗고 빠알간 꽃들이 아파트를 잇는 길가에 활짝 피어난다.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한 해 한 해 잘 버텨낸 나무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여행을 하듯 봄 거리를 걷는다. 어느 해 보다 발걸음이 가벼운 봄이다. 얼마 전 청포원을 걸으며 만났던 겨울 새떼들이 생각난다. 직선이거나 곡선으로 시간의 공백을 날아가고 있을 새떼들. 한 계절을 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날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초감각의 힘으로 자신의 두 날개로 봄을 맞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한 계절을 견디고 있을 새들의 날갯짓이 생각난다. 우리에게 견딤이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공기보다 가벼워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견딤으로, 그 힘으로 살아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차분한 봄 밤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 새떼들이여. 낭창낭창 꽃가지에 봄이 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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