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1)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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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에 누구 누구가 있나?(3)
소설가 김지연(金芝娟 1942- )은 진주여고 32기(진주고 동기는 31회)로 졸업하고 중앙대 예대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다. 그는 현재 『일신문학회』회장을 맡고 있고 문단은 1968년 월간 『현대문학』에 「山影」 (2회 추천완료)으로 등단한다. 박경리 이후 중앙문단 정통파로는 그의 선배 김여정(1933- )이 같은 해 『현대문학』인데 이들은 나란히 활발히 활동하면서 전국 가는 곳마다 요새말로 하면 진주여고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지연의 등단 이력은 복잡하고 화려하다. 써놓고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본인으로서는 배배꼬이는 시간을 보낸 셈이다. 그는 서라벌예대 시절 김동리 선생에게서 소설을 배웠다. 면접고사를 치는데 김동리 선생은 “뭐라꼬, 진주에서 왔다꼬?”하면서 진주라는 장소성에 은근히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것은 김동리와 사천 다솔사 시절을 알고 있는 필자만이 코멘트할 수 있는 사항이다. 김동리는 사천 다솔사에 들어와 청춘 20대 10여년을 살면서 소설 쓰고 결혼하고 아들을 3명이나 두게 된다. 배우자는 진주여고를 나온 김월계 여사이고 당시 함양에서 잠시 교사로 있던 재원이었다.

거기다 김동리는 진주를 거쳐 해인사도 가고 서울도 가고 출입했을 것이다. 뒤에 박경리라는 대형 소설가를 길렀는데 그가 일제말 진주여고(17기)에서 학업을 닦았던 것 아니던가. 어쨌든 김동리 선생 앞에 또 하나의 진주여고 출신이 나타나 가물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등단시기에 김동리 선생은 제자 김지연이 스스로 붙인 김석라(金石羅, 본명은 김명자)는 영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자 이름에 필명이라 하더라도 돌(石)이 들어가면 작품도 못쓰는 돌덩이가 된다고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경리에게 붙여주듯이 김지연에게도 김석라, 김명자는 안되고 ‘김지연’ (풀뿌리에 예쁠 연자를 붙여서)을 붓글씨로 써서 두 말 말라고 낙관을 콕 찍어버리더라는 것이다. 김명자는 그렇게 하여 ‘김지연’이 된 것이었다. 한동안 그녀는 이 이름이 너무 성미에 맞지 않아 고민했다.

김지연은 1964년 여성잡지 『女像』에 소설로 당선되었지만 문창과 전문 학과 졸업생으로 자존감 상하는 일로 여겼다. 1966년 동아일보에 응모했으나 양문길이 당선되고 스스로는 고배를 마셨다. 이때 좌절감을 느낀 김지연은 진주로 낙향하여 경남일보에 입사했다. 경남일보에는 고교시절 동인 선배 최용호가 ‘진주문화방송’으로 옮겨 있었고 여류 선배 이월수가 『영문』출신으로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 시기 김명자는 선배 국장단에게 부탁하여 서울에서 신진 시인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1965)과 공보부 신인예술상 최고상(1966)을 받아 중앙 문단의 별로 떠오른 신진 시인 강희근이 진주 귀향길이면 만나보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필자가 1966년 겨울쯤 되었을까 진주에 오니 연락이 왔다. 경남일보 기자로 있는 김명자씨가 신문사 앞 대호다방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초대면하였는데 일성이 “아, 축하합니다. 같은 시기 진주고 출신이신데 등단 과정이 이리 멋진 진출은 참으로 대견하세요.”하고 한국문단 등단에 독이 올라 있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김기자는 마산쪽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또 그 얼마 뒤 서울로 가 자리잡았고 미진한 등단 행보는 계속되었다.

1967년 천주교 대구교구 발행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천태산 울녀」로 당선하자 김동리 선생이 불러 찾아가니 “뭐가 그리 성급하게 등단한다꼬 여기저기 기웃거리나? 며칠 내 빨리 한 편 써서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랬더니 그 작품 「山影」이 월간 『현대문학』 소설 장르에 김지연 이름으로 단번에 2회추천(1회는 매일신문 「천태선 울녀」를 인정) 통과가 되어 한많은 과정을 끝낸 것이 되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문인이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 탕진하는지를 이 일신문학회장 김지연 작가의 등단 이력이 잘 알려주고 있다 할 것이다. 비봉산 아래 민족학교(민족자본으로 세운)로 개교한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의 후신 진주여자고등학교의 딸은 이러한 칡뿌리 같은 근성을 지니고 있어 그 전통에 걸맞는 여성 지도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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