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전남 청년작가 교류전 ‘오후 세 시’
경남·전남 청년작가 교류전 ‘오후 세 시’
  • 백지영
  • 승인 2024.04.0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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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조현택 작가 전시 공간.
‘오후 세 시는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오후 세 시의 시침 위에서 신진 작가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중견 작가로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경남과 전남의 청년 작가들이 모였다.

각자의 개성을 또렷이 지니고 있지만, 불안을 안고 예술가로서의 내일을 꿈꾸는 행보는 장르·지역의 경계를 넘어 맞닿는다.

경남도립미술관은 5일부터 오는 5월 26일까지 미술관 3층 4·5전시실에서 경남·전남 청년작가 교류전 ‘오후 세 시’를 개최한다.

경남도립미술관과 전남도립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 경남 7명, 전남 7명 등 모두 1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다.

 
윤준영 作.
◇공동 기획전의 시작=이번 전시는 1년 전 경남도와 전남도가 맺은 상생 발전 협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체육·관광 등 5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하면서, 양 도립미술관의 공동 기획전이 추진됐다.

양 도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머리를 맞대는 전례 없는 기획전에 처음에는 잘 치러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실무 회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의미의 전시를 선보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양 미술관은 독립적인 행보를 고수하는 대신 작가 선정 단계부터 서로 소통하며 장르적 균형을 논의하는 등 부단한 협업 끝에 이번 전시를 만들어내게 됐다.

그 결과 경남에서는 도립미술관 개관 20주년에 맞춰 그간 N ARTIST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군 중 감성빈·김원정·노순천·이정희·정현준·최승준·한혜림 등 7명이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 전남에서는 김설아·박인혁·설박·윤준영·정나영·조현택·하용주 등 7명이 참여했다. 1년에 가까운 준비 과정은 양 미술관의 소통은 물론 참여 작가 간 교류로 이어졌다.

‘오후 세 시’展은 지난 1월 30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먼저 개막했다. 2달여 만인 5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전시는 전시명과 참여 작가는 동일하지만, 일부 작품 교체와 전시실 특성에 맞춘 재배치로 지난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전시는 미술관 내 2개 전시실에서 진행되는데, 전시실에 따라 지역이나 매체·주제 등에 따라 구분하는 대신 서로 감각적으로 어우러지도록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감성빈 作 ‘그날’.
◇지역색 물씬=전시에서는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 특히 눈에 띈다.

감성빈(창원) 작가는 묵직한 슬픔 한 가운데 희망을 녹여내는 회화와 조각을 선보이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경남과 전남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 등을 선보인다. 이승만 정권이 마산 괭이바다에서 자행한 민간인 대학살을 다룬 2021년 작 ‘표류’를 내놓으며 전남의 비극을 소재로 한 ‘그날’을 새롭게 제작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여순 사건 당시 죽어가는 이들을 군인이 강압적으로 쳐다보는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두 회화 작품 모두 작가가 직접 조각한 액자에 담겼는데, 작품 속 비극을 감싸안아 주기라도 하듯 액자 테두리에 서로 몸을 맞대고 누운 이들이 새겨져 있다.

김설아(여수) 작가는 고향에 대규모 화학 단지가 들어온 후 주민들이 이유 없이 아프고 죽어나가는 현실을 목도한 작가로, 사라진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작품에 녹여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거대 자본과 권력의 횡포로 주민들이 사라진 고향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벌레와 미생물, 곰팡이 등을 통해 작가가 느낀 희망을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벌레의 촉수 등을 거대하게 표현해 권력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한편, 버려진 땅의 물을 대형 눈물의 형상으로 표현해 연약한 존재가 지닌 힘을 표현했다.

조현택(나주) 작가는 짧은 시간 고도로 성장한 한국 사회에 관심을 두어 도시와 비도시 경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기이한 한국의 풍경 등을 사진으로 담는 작가다. 사진 매체를 통해 현실 안팎의 세계를 이미지의 환영과 같이 교차시키며 실재와 허구 사이를 오가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주, 함평, 광주 등에서 거주민이 떠나고 버려진 집을 배경으로 촬영한 ‘빈방’ 연작을 선보인다. 빈방 내부에 건물의 외관 모습이 거꾸로 맺히게 하는 이중 구조 촬영 기법을 활용해 찍은 사진들이다. 폐허가 된 공간에서 누군가 살았던 삶의 흔적과 냄새, 기억과 슬픔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한혜림(창원) 작가는 오늘의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다룬 영상 작품 ‘소리로 쌓은 탑’을 선보인다. 작가는 무턱대고 밀양으로 농활을 떠나 마을 어르신들과 교유하는 과정에서 10년이 훌쩍 넘은 밀양 송전탑 이야기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픔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바람이 부는 날 흔들리는 전선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 이로 인한 청각적 고통을 호소하는 어르신들, 찬반 입장에 따라 분열된 공동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현재의 이야기라고 느낀 작가는 영상 인터뷰를 기반으로 굉음을 음악화해 은유적으로 녹여내고, 전선의 흔들림을 춤추고 날아가는 시각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등 감각적인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정나영 作 ‘Wake Up!(일어나!)’.
◇참여형 전시 ‘눈길’=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 작가들도 있다.

정나영(여수) 작가가 퍼포먼스와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구성한 신작 ‘Wake Up!(깨어나!)’가 대표적이다. 작가 본인이 누워있는 모습을 조각한 뒤 이불을 덮은 듯 천을 덮은 모습을 다시 조각한 작품으로, 청년 작가 교류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예술가로서 성장하려면 자신만의 틀을 깨부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작품인데, 관객들이 참여해 작가들을 깨워줄 수 있도록 작품 주변에 바늘과 판사봉 을 배치했다. 직접 작품에 바늘을 대고 판사 봉을 두드려 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작품 내부엔 전남과 경남에서 함께 채집하고 조합한 흙이 들어있다. 전시가 진행되며 작품이 모두 깨질 경우 온전한 새 작품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여분의 작품도 준비해 뒀다.

이정희(창원) 작가의 ‘담요 드로잉-잊혀지다’ 역시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작품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체험형 작품이다. 이 작가는 사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질서와 사고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개념 미술을 해온 작가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언뜻 보면 3·1운동 발상지 기념비, 독립운동 기념터 등 주요 표지석을 모아서 걸어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회색 담요에 실제 표지석의 글들을 새긴 뒤 설치한 것이다. 3·1운동 100주년 당시 독립운동 유적지와 독립 선언문을 담은 표지석 등이 방치되고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작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잊혀 가고 있는 현실을 담요에 아로새겼다. 한 번의 손짓에도 담요의 결이 눕혀져 기존 문양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호기심이 품은 관람객의 손가락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이 오늘날의 현실을 은유한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조현택 작가 전시 공간.
윤준영 ‘보이지 않는 눈과 응집된 것’. 사진=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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