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객원칼럼]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 경남일보
  • 승인 2024.04.1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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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건축기술사·변리사
고영회 건축기술사·변리사


세종은 세금을 걷는 방식을 변경하려 했다. 새 방식으로 세제를 개편하고 백성에게 의견을 물었다. 백성 17만 명을 대상으로 5개월에 걸쳐 여론을 조사했다. 찬성이 많았지만 세종은 지역에 따라 의견에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14년 동안 보완한 뒤 세제를 확정했다. 1400년대 전제 봉건시대에 절대 권력을 쥔 왕이었음에도 제도 시행에 따라 나타날 역작용이나 부작용을 고민했다. 놀랍다.

행정학책을 보면, 국가 정책은 ①정책의제 설정(사회에서 등장하는 많은 문제 가운데 공적인 문제로 취급되어 정부에서 해결하기로 공식적으로 채택되는 과정), ②정책의 결정(정부 기관이 장래의 활동 지침을 결정하는 것. 활동 지침은 공익을 추구하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문제의 파악, 정책목표의 설정, 정책대안의 개발과 결과 예측, 정책대안의 비교평가와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③정책의 집행(정책의 내용을 실현하는 과정), ④정책의 평가, ⑤정책의 종결(역효과가 나거나 중복되고 잘못 만들어진 불필요한 정책을 의도적으로 중지하는 것. 정책은 정당성의 상실, 환경 엔트로피 저하, 조직의 위축 등의 원인으로 종결된다)이란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정부가 마련하는 모든 정책은 원리를 따르는 것이겠다.

선진사회는 치밀하게 얽혀있다. 정교하고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선진사회다. 관련된 사람이 많고, 결정 요소도 많다. 선진사회에 얽힌 문제를 풀려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단칼에 한 가지를 싹둑 잘라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섣부르게 어느 하나만 건드리면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긴다. 복합된 사안일수록 꼼꼼하게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구개발비 예산 30%를 잘랐다. 연구개발비 카르텔이라고 자극적인 이름 붙였다. 장기 연구과제에도 예외는 없었다. 권력자 한마디에 연구개발 생태계는 망가지고, 과학기술 인력은 떠났다.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내년에는 연구개발예산을 복원하겠다고 했다. 연구개발 환경은 예전처럼 되돌아올 수 있을까?

정부는 의료체계를 혁신한다면서 느닷없이 ‘당장 2025년 의대 2000명 증원’을 내걸었다. 장래를 고민한 흔적, 목표 연도와 목표 값이 무엇인지 없다. 행정학에서 얘기하는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직 증원만 마구 몰아붙였고,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해 가면서 겁박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의료체계는 전문 분야라 전문지식 없이 감성으로 얘기하면 곤란하다. 부당함에는 당연히 반발한다. 전공의가 떠났고, 교수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냈다. 의료체계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무너진 뒤 되돌리더라도 전과 같지 않다.

국민은 정부가 공익에 도움이 될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공무원이라면 적어도 나라 앞날을 걱정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 시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정부는 그에 필요한 수단이 있다. 의료체계 개편 문제에 정부를 믿을 만했나?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 공화제는 ‘국가를 국민이 협의하여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체제’다. 민주공화국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권위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무원이 운영한다. 우리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정해뒀다. 나라 주인은 국민이라 해 뒀지만, 주인은 언제나 뒷전이다. 오직 선거할 때 한 표 흔드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이따금 있는 이런 기회가 있어 나라가 지탱된다.

나라 머슴이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표로 혼낸다. 이번 선거 결과가 그것이다. 국민의 매는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다음에는 누가 매를 벌고 있을까. 다음에는 힘을 주는 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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