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디지털 시대 현수막 정치 끝내자
[경일시론]디지털 시대 현수막 정치 끝내자
  • 경남일보
  • 승인 2024.04.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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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67%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역구·비례 의석을 합쳐 더불어 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이 12석 등을 얻어 야권의 압도적인 선거로 끝났다. 4·10 총선이 끝나자마자 전국 길거리에 도배하듯 걸렸던 현수막도 일제히 철거되면서 현수막 공해가 사라지나 싶었지만, 아니다. 그 자리엔 곧바로 결과승복 현수막이 점령군처럼 내걸렸다. 현수막은 하나마나한 인사치레성이거나 훗날을 도모하는 결기서린 출사표인양 걸렸지만, 국민의 눈에는 공해 같은 홍보물에 불과하다.

선거기간 뿐 아니라 연중 내걸리는 정치현수막은 엄청난 물량 공세로 상호비방에 막말을 퍼 나르는 퇴행적 언어공해를 유발시키고 있다. 미래를 꿰뚫는 식견은커녕 실망과 자괴감이 들 정도다. 낮은 수준의 정치언어로 채워진 현수막은 국민정서 피폐와 환경오염 주범으로 인식될 정도다. 총선이 끝났지만 결과를 보노라면, 여야 진영 다툼은 더욱 치열해지고 정치현수막 내용 역시 거칠어질게 불 보듯 뻔하다. 벌써 당선사례 현수막이 선전포고문처럼 나부끼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현수막은 매립해도 썩지 않고 태우면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 파악이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현수막은 재활용 대상 플라스틱이지만 재활용률은 25%에 불과하다.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정부의 재활용 정책과 완전 딴 방향이다. 무소불위 정치권의 공세에 누구도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입만 열면 기후위기를 경고하면서도 정책은 엇박자다. 이번 선거에서도 168명의 후보자가 환경공약을 냈지만, 그 공약을 담은 현수막이 유발시키는 환경오염에는 눈 감았다.

2018년 공직선거법 개정 후 읍면동마다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이 1개에서 2개로 늘었고, 2022년 12월에는 신고절차와 장소도 제한하지 않도록 법까지 고쳐 현수막 난립에 기름을 끼얹었다. 환경부가 파악한 지난해까지 5년 간 선거철 폐현수막 발생량이 1만4000t에 달한다. 이번 총선에선 260만 장 이상의 현수막이 수거될 것으로 추정된다. 수거되지 않고 무단 폐기되는 현수막까지 합한다면 전국에 내걸린 현수막은 이 보다 훨씬 늘어난다.

‘현수막 탄소발자국’ 문제를 지적한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자료를 보면 현수막 공해는 결코 간단치 않다. 지난 21대 총선기간 제작된 현수막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192.2t이다. 소나무 2만1100여 그루가 1년간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22대 총선기간 제작된 현수막이 배로 늘어났으니 온실가스 배출량도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은 자명하다. 현수막과 함께 유권자에게 배부되는 공보물까지 합치면 2주에 불과한 선거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는 2만8000t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 5.4억 개를 사용했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같다.

이쯤 되면 더 고민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길거리의 요란한 현수막 없이도 선거를 잘 치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분석한 선거정보 취득 매체별 영향력이 현수막이 꼴찌인 점을 보더라도 그렇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라는 나라에서 못할 것도 없다. 국민정서를 해치고 심각한 탄소발자국까지 남기면서 홍보효과도 떨어지는 현수막 선거는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당장 완전 폐기는 어렵겠지만, 점진적으로 용도폐기 할 수 있다. 현수막 없는 정치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선거 캠페인에 활용 가능한 미디어채널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정치인 모두 현수막 없이 선거운동을 한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공평하기 때문이다. 현수막 정치를 끝내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선거문화를 만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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