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투표의 역리가 빚게 될 후폭풍에 대한 우려
[경일시론]투표의 역리가 빚게 될 후폭풍에 대한 우려
  • 경남일보
  • 승인 2024.04.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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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정영효 논설위원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결정은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일반적인 투표방식이 유권자 1인당 1표가 부여되며, 다수의 득표에 의해 결정되는 단순 다수결제다. 다수에 대한 어떠한 비율 없이, 무조건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 다수결제는 상식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여기고 있음에도 ‘투표의 역리(逆理)’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내재돼 있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그의 저서 ‘사회적 선택과 개인적 평가’에서 “선거에서 합리적이면서도 모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투표제도는 없다”고 했다.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됐지만, 그 과정이나 결과는 결코 합리적이거나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결정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내재된 모순성으로 인해 이치에 어긋난 결정이 나타나는 게 지금의 투표제도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다수결 투표 이외에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 민주국가들이 선거에서 다수결 투표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딜레마다.

4·10 총선에서 300명의 당선인이 국민의 투표에 의해 결정됐다. 하나 합리적 투표를 한 건지 의심이 든다. 물론 4년간 활동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전 국회의원들 보다 더 나은 인물에게 투표를 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단순 다수결 투표제의 모순성 탓에 그 어느 선거 보다 ‘투표의 역리’에 따라 결정된 당선인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기준에 따르면 낙천·낙선되어야 하는 인물들이 그 어느 선거 때 보다 많이 당선된 것 같다. 공천 과정에서 본선거 때에 폭언·막말·망언은 애교 수준이었다. 비리·투기에 연루된 후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후보, 범죄를 저지르고 형을 선고받은 후보, 심지어 감옥에서의 선거 출마 후보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자질 미달 후보들이 더 큰소리치고, 더 당당했던 난장판 선거였다. 여기에 맹목적인 진영논리에 함몰된 팬덤층이 부화뇌동했다. 범죄자, 비리 혐의자, 막말 파문자, 자질 미달자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당선되지 않았어야 할 후보들이 ‘투표의 역리’에 의해 대거 당선됐다. 정당 투표에 있어서는 ‘투표의 역리’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합리적이라면 꼼수 비례위성정당, 비리 및 범죄 혐의자가 결성한 정당 등에는 표가 찍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당에 더 많은 표를 던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전에 실시됐던 모든 선거가 그랬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는 ‘투표의 역리’ 현상이 유독 더 심했던 선거였다. 공천 과정에서도, 본선거에서도 진영과 적대 논리에 의한 투표가 강요됐다. 우리편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당장 나라가 절단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다른 편에게 투표하면 경제도 파탄날 것이라고 했고, 국민의 삶은 고통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선동했다.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기감과 불안감 조성으로 인해 ‘투표의 역리’가 극대화된 선거였다. 인물 적합도를 떠나 무조건적인 ‘묻지마 자기편 투표’ 였던 것이다. 그런 탓에 소신파 등 일할 수 있는 후보들이 대거 탈락하고 말았다.

오는 5월 30일 개원되는 22대 국회는 ‘탄핵국회’, ‘특검국회’, ‘방탄국회’, ‘보복국회’가 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야권에서는 개원과 동시에 특검에 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하는 당선인도 있다. 민생 보다는 상대편 괴멸이 먼저다. 여권·정부는 야권을 인정하지 않고, 야권은 정부·여권이 반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여기에 여권은 반발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 예견된다. 협상과 소통, 협치는 실종하고, 거대 야당과 정부·여당 간에 불통과 극한 대결이 3년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써부터 ‘투표의 역리’에 의해 선출된 자질 미달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22대 국회가 몰아칠 후폭풍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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