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경 갤러리 DO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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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문학과 음악 미술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로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와 트롯트 ‘동백아가씨’ 등 장르를 불문하고 애절한 사연의 모티브로 쓰여지고 있다.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로 1985년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이제하 선생은 ‘모란·동백’이란 시를 쓰고 곡을 붙이셨다. 다른 가수가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됐고, 노래방에 가면 일행 중 누군가는 꼭 부르는 이 노래를 오래 전에 이제하 선생이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생을 초월한 듯한 담백함이 더 쓸쓸하게 와 닿았던 듯하다.
일주일 전 고창의 선운사에 다녀왔다. 절에 들어서자마자 동백꽃이 아직 남아있나 하는 조바심으로 먼저 대웅전과 영산전 뒤 동백나무 숲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행히 동백꽃들은 윤이 나는 초록 잎사귀 사이로 수줍게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봄이 한참 깊어 동백의 붉은 빛은 이미 제 빛깔을 잃었고, 매달려 있는 꽃보다 더 많은 꽃송이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어 애처로웠다.
서울과는 꽤 거리가 있음에도 봄마다 선운사에 여러 번 갔던 까닭은 순전히 선운사의 동백 때문이었다. 선운사는 절 뒷편에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맨처음 선운사에 갔던 오래 전 4월에 동백을 보고 두 번 놀랐다. 동백나무들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에 놀랐고, 4월에도 동백꽃이 피어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3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피어 개화시기가 가장 늦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절 중에서도 유독 선운사가 문학사에서 하나의 레토릭이 된 것은 절의 이름이 주는 서정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실은 동백꽃 때문일 것이다. 동백꽃은 꽃이 질 때 꽃잎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커다란 꽃송이째 바닥으로 툭 떨어져 꽃의 목숨을 다하는 그 애잔함으로 시적 메타포로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닐까.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 동백을 노래했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선운사 동백꽃’에서 연인과의 이별의 애절함을 풀어냈다. 최영미 시인도 시 ‘선운사에서’를 통해 짧게 끝나버린 지나간 사랑을 읊조리고 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의 노랫말은 쓸쓸해서 매혹적이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꽃이 언제 피었던가 할만큼 빠르게 꽃이 지고 꽃진 자리에 앉은 연두빛이 초록으로 짙어지며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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