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무지개를 닮은 강성갑 선생
[경일포럼]무지개를 닮은 강성갑 선생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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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달 9일에 강성갑 선생의 흉상을 재단장해 진영고등학교에서 제막식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홍태용 김해시장은 예산을 편성해 기념관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무지개를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강성갑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2023년 8월에 있었던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선생 백일장’에서 초등부 장원을 차지한 김이레 학생의 ‘무지개를 닮은 마음’에서는 친절하게도 여러 가지 색깔로 설명해주고 있다. 빨강색은 용감한 마음이고, 주황색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노랑색은 불빛처럼 밝은 마음이고, 초록색은 새싹을 보듬어 주는 마음이고, 파랑색은 굽히지 않는 당당한 마음이고, 보라색은 정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마음이라고 한다.

해방 직후 김해 진영에는 도립 김해농업보습학교만 있을 뿐 중등학교는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부잣집 자녀는 마산이나 부산으로 가서 중학교를 다녔으나 나머지 대부분은 노동일을 하거나 농사를 지었다. 이런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강성갑 선생은 맨손으로 나서서 한얼중학교를 설립했다. 직접 마이크를 들고 학생모집을 하러 다녔다. 학생들과 함께 흙벽돌을 찍어서 건물을 짓고, 교직원과 가족들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공동 취사생활을 했다. 졸업식도 농사일에 지장이 없도록 밤에 한 적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며 교장과 교사 월급이 같았다.

교육운동에 헌신한 강성갑 선생은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았고,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사를 채용할 때도 “나에게는 빨갱이고, 노랭이고가 없다. 마음 고치고 예수 믿고, 그 인격이 변화되어 나와 손잡고 일하면 누구든지 나의 동지로 생각한다”고 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익으로 보였을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좌익으로 보였을 것이다. 강성갑 선생은 미군정이 빈민농가에 나눠주는 구제품을 가로채는 관리들을 공개석상에서 나무랐고, 정부 양곡을 도정하는 이들이 대량으로 부정을 저지르자 심하게 질책했다. 당연히 친일파인 지역유지들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강성갑 선생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 길을 굳건히 걸어갔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요시찰 인물에 대해 묻지마 예비검속과 집단학살을 할 때였다. 이 혼란을 이용해서 지역 유력자인 국민회 위원장, 부위원장, 동읍 읍장, 부읍장, 지서장, 청방단장 등이 평소 눈엣가시였던 강성갑 선생을 총살시키기로 공모했다. 이 결정에 따라 지서장과 경찰 2명은 강성갑 선생을 낙동강 수산교 밑으로 끌고 가서 총살했다. 38살 때였다. 당시 민간인 희생자 중에 유일하게 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가해자들은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 징역 10년 등을 선고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에 함태영 부통령, 이상룡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정계, 학계, 교계 인사와 진영읍 주민들 이삼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흉상 제막식을 성대하게 했다.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2008년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전쟁 기간 중에 일어난 ‘김해지역 양민학살사건’의 희생자임을 밝혔다. 백일장에서 고등부 장원을 한 진영고등학교 박수진 학생은 ‘기억’이라는 시에서 가해자들을 넝쿨이라고 하고, 강성갑 선생을 작은 꽃 한 송이라고 하였다.

‘……/ 꽃과 나무와 맑은 물이 있는 들판 속/ 이런 마음을 모르는/ 넝쿨이 발목을 잡네//……발목을 잡은 넝쿨이/ 결국 다 잡아갔네/ 그리고 그 자리에 작은 꽃 한 송이가 있네// 자신을 잊지 말라는 것일까/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꽃 한 송이는/ 이 들판을 에워싸네’

백일장 심사위원인 시인 김종화는 ‘이념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던 해방공간에서 이념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 주었지만 이념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아간 것이 발목을 잡는 넝쿨’이라고 했다. 좌우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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