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을 누가 철거했을까
꽃대는 누수가 시작되었고
군데군데 금 간 잎은
눈빛이 흐려졌으며
피었던 꽃을 누가 철거했을까
당신의
내벽에서
한때 분홍이었던 나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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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입김으로 봄은 열렸고
수줍고 간지럽게 밀어 올린 꽃대 위 꽃인 적이 있었지
그대의 어깨에 영혼을 기대고 무게로 기운 적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도 세상일인지라 어디서 빌려온 바람과
훔쳐 온 흙먼지에 꽃잎은 틈이 생기고
흐려진 눈빛과 함께 시들어 버린 우리의 봄날이었지
서로를 가슴 안쪽에 숨겨둔 우리는
누가 먼저였는지─ 꽃잎은 낱낱이 뜯겨버렸어
균열의 단초는 어디부터였을까
당신의 깊은 곳에서 분홍 꽃으로 피었던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래도 한때를 달궜던
곡진한 시 한 편이 이 봄날을 데운다.
짧은 시(詩)이면서도 많은 이들의 이력을 끌어내
돌이켜보게 하는 힘이 크다.
누군들 그런 봄날이 없었겠나. 숨겨둔 사진첩의 그녀처럼.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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