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성 복원, 사람 이야기도 담아야
[경일춘추]진주성 복원, 사람 이야기도 담아야
  • 경남일보
  • 승인 2024.05.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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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 진주교대 교수
이동민 진주교대 교수


십수 년 전 대구광역시 근대 골목 사업을 주관했던 시민단체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었다. 구한말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가 80~90년대를 거치며 크게 쇠퇴한 대구역 인근의 구도심을 문화와 역사를 담은 공간으로 되살리는 이 사업에서는, 구도심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도 중요하게 이루어졌다. 이상화 시인, 이인성 화백 같은 위인들, 3·1운동 같은 역사적 사건은 물론, 쇠락한 옛 골목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장사를 하며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진지하게 발굴하고 재조명했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되살아난 대구 근대골목은 지금은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 관광지로 거듭났다.

진주성 원형 찾기는 진주시, 나아가 경남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문화적 숙제다. 진주, 나아가 경남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명소인 진주성은 사실 원래 진주성의 절반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촉석문 동쪽으로 넓게 나 있던 외성을 허물고, 그 북쪽에서 해자 구실을 하던 대사지(大寺池)까지 메워 버렸던 탓이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지금 남아 있는 내성보다도 더 큰 면적까지 아울렀던 외성까지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역사지리학 연구에도 천착하는 필자로서는 진주성 원형 찾기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당연히 공감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진주성의 외성, 나아가 대사지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올 여름 준공 예정인 진주대첩 광장 역시 진주성 원형 찾기를 주장해 온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기대고 있는 부분도 절대로 작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진주성 원형 찾기 사업이 정말로 진주와 경남의 문화, 사회의 의미 있는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성벽, 연못(해자) 같은 공간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그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오고 있는 땅은 건물, 성벽, 도로처럼 형체가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경험, 기억, 정체성 등과 같은 주관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는 장소로서의 의미 또한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기억, 정체성을 제공해 주는 장소에 애착과 향수를 느끼고, 그런 장소를 소중히 여긴다. 진주성의 내성은 물론, 지금은 없어진 외성과 대사지 역시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이다. 역사 속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진주성 외성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조상들의 노력과 슬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진주성 안에서, 또는 성을 오가며 살았던 조상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외성이 허물어지고 대사지가 메워진 뒤에도 그 자리에는 수많은 진주시민이 살아왔고, 오늘날에도 진주시 구도심으로써 진주의 문화와 역사를 잘 재현하고 있다.

진주성이 그 원형을 찾는다면, 그 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진주대첩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그리고 진주성 외성 터에서 삶을 이어온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진주성이라는 사적의 원형을 되찾고 보전하는 일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터이기도 했던 진주성에서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삶을 살며 빚어낸 다채로운 이야기까지 함께 살려낸다면, 진주성은 사적, 유적을 넘어 진주시민, 경남도민의 삶을 아우를 수 있는 문화와 삶이 이어지는 장소로까지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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