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느림의 미학
[경일춘추]느림의 미학
  • 경남일보
  • 승인 2024.05.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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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전시해설사
이효재 김해클레이아크 전시해설사


유학을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2012년부터 약 9년을 살았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해 자연스럽게 이탈리아로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처음 도착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피우미치노 로마 공항, 낯설었던 땅에서 느껴진 기분은 뭔가 다른 공기였다. 수도권에서 대학생활을 한 나는 항상 지하철 시간을 휴대전화로 확인하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달리기 일쑤였다. 이탈리아는 달랐다. 누구 하나 뛰는 사람이 없었다. 아, 이거였구나! 뭔가 이질적인 기분은 바로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유학 첫해 이후 로마에서 밀라노로 유학 도시를 옮겼다. 밀라노는 서울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건물이 모습이 아니라, 도시를 감돌고 있는 느낌이 메가시티와 닮아 있었다.

1년간의 밀라노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로마로 되돌아갔다. 편안한 느낌이었다.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고, 그럴만한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는 공유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다. 5차례의 이사 끝에 어렵사리 정착한 아파트에서 2명의 이탈리아 친구를 만났다. ‘파비오’와 ‘파우스토’, 한 명은 화장품 외판원, 한 명은 공무원이었다. 이 두 친구와 함께 살면서 처음 로마에 도착했을 때 나를 감싸고돌았던 그 기운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것은 여유였다. 삶을 대하는 여유로움이 이탈리아 사람들 생활 곳곳에 묻어 있었다. 어느덧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삶의 리듬과 동화돼 갔다. 그러면서 가끔 마주치는 한국인들을 피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약 2시간 동안 하루를 이야기하면서 느리게 먹는 저녁도 좋았고, 약 30분에서 1시간 동안 매일 즐기는 산책이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 아래 단골 바에 가서 마시는 카푸치노 한 잔은 마치 내가 중세 시절 귀족이라도 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놀라웠다. 정오의 결혼식이 자정까지 계속됐다. 음식들은 끝없이 제공됐다. 이후 이스라엘부터 포르투갈까지 유럽에선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국가를 다녔다. 이때 배운 여유로운 태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는 습관이 됐다. 타국인을 만났을 때 조금 더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큰 자산이 됐다.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은 물질적인 액수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마음과 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의 9년간 해외 체류 시절 얻은 가장 큰 재산은 성악적 성장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 여유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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