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연 작가 3번째 소설 '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작가 3번째 소설 '오르톨랑의 유령'
  • 여선동
  • 승인 2024.05.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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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적 문체로 그린 독백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로 언어의 틈새를 벌리며 갈망하는 글을 쓰는 이우연 작가가 세 번째 소설 ‘오르톨랑의 유령’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혼자임을 피할 수 없는, 이름이 없어 장소로밖에 명명될 수 없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자이기에 느끼는 절박한 외로움과 닿을 수 없는 희망을 갈망하는 이야기들이 강렬하며 함축적인 내용의 장들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글은 동시에 혼자일 수만은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들에 관한 글이다. 이곳,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거주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그것들은 더럽고 비좁은 틈새에서 불가해한 중얼거림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악몽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려 몸부림친다. 그것들은 불가능한 밤을 스스로 번역하고 해석한다”고 했다.

이 글은 유령들이 태어나고 머무는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며 그곳에서 짖어대는 소통 불가능한 울음이다. 이곳의 목소리들은 감실에서 태어났다. 아직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짐승들이 이곳에서 몽유한다.

“나는 감실에서 쓰인, 불가능한 언어가 오직 읽히기 위해 무한히 다시 쓰이는 광경을 보고 있다. 친구도 애인도 적도 가질 수 없었던, 오지 않는 늑대를 기다리며 집을 짓고 있는 돼지들이 그들의 검은 울음을 쓴다. 언젠가는 이 집요하고 허망한 갈망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럴듯한 친구도 미래도,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가지지 못한 것들이 읽히는 날이 올까?”

이 책의 화자들은 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혼자 하는 일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따위로 혼자 소리를 내고, 청소 도구함 속에서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속할 수 없는 푸른빛으로 돌진하면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갈망을 소리친다. 하지만 홀로 내는 소리는 아무런 반향도 없이 홀로 사그라든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그 소리는 원하는 이에게 결코 가 닿지 않는다. 둔중하고 차가운 사물들의 등을 치고 사라져버릴 뿐이다.

그런데도 이곳의 조각들은 어떤 소리들을 만든다. 대답하지 않는 작은 개에게 말을 걸고, 피아노의 뼈를 으스러뜨릴 듯 두드려대며, 바이올린의 현에 베고 싶은 것처럼 손을 날카롭게 미끄러뜨린다.

이런 소리들의 파동 속에서 화자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겁을 먹거나 죽음을 결심하고, 절망에 안식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 그들 자신이 아닌 것에 가 닿기를 원하고 좌절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뿐이다. 결국 그들은 망상증자이며 그것들의 고독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짓을 닮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 있다. 그들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당신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만이 그들이 희망하는 불가능이다.

소설 속 문장들은 불가능한 희망(혹은 절망)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삶을 사는, 명명되지조차 않은 존재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인 오르톨랑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소단원 ‘주방’은 멧새의 일종인 오르톨랑의 잔인한 요리법에서 오르톨랑이 겪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닿을 수 없는 글을 쓰는 작가의 아픔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날카롭고 탐미적인 문체로 절박하게 표현한다.

이우연 작가는 2021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 ‘공시의 문법’을 발표, 2022년 문예연구에서 소설 ‘사진’을 발표했다. 첫 번째 장편 소설 ‘악착같은 장미들’ 출간에 이어 지난해에 두 번째 소설집 ‘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를 발간했다.

문예연구. 208쪽, 1만 5000원.

여선동기자 sundong@gnnews.co.kr

 
이우연 소설집 ‘오르톨랑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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