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바람도 도반이 되는 명품 숲길
[시민기자]바람도 도반이 되는 명품 숲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5.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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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다솔사 칠암자 순례길
나만의 최고 조망터 ‘시루바위’
새 명물 ‘갓바위’…천혜 조각품

옛고을 곤양과 별주부전의 본향인 서포가 그림처럼 안겨 온다. 와룡산 너머 다도해도 윤슬처럼 넘실거린다. 돌탑위에 마음 한자락 얻어놓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시선을 보낸다. 옥신각신 마주한 세월을 넘어 이젠 나란히 가는 든든한 길처럼 소담한 산기슭에 도량을 쌓은 이곳은 다솔사와 보안 석굴암을 품은 물명산 갓바위다. 신을 대하듯 아내는 합장한 채 마음을 내린다. 일망무제, 희열이고 고요다. 지그시 눈 거두니 선경이고 바람도 도반이 되는 숲길, 그 여정은 경건한 순례고 정화다. 다솔사를 기점으로 봉암, 불일암, 보안석굴암, 갓바위, 용산리 절터, 서봉암을 아우르는 칠암자 명품길로 떠나보자.

다솔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천년고찰이다. 만해 한용운과 등신불을 쓴 김동리 등 당대 호걸들이 인연을 맺은 호국사찰이자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면목은 진입로 솔숲이다. 부처님 세상에 들어선 듯 청정 도량이다. 내 집처럼 다솔사에 가지만 아내는 꼭 걸어서 이 숲을 지난다. 굳이 명품숲 선정의 명성이 아니어도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선계에 든 듯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

솔향이 달고나 라떼처럼 부드럽고 달다. 요람처럼 포근한 다솔사를 뒤로하고 차밭을 거슬러 올라서면 봉일암이다. 조망이나 고즈넉한 맛은 덜하지만 수행의 기운이 스며 먼발치에서 합장하고 돌아선다. 새소리가 유난히 맑다. 바삭한 낙엽을 닮았다. 간식을 꺼내 바위 위에 보시한다. 어린 차나무가 길을 연 불이암은 아직 산문을 걸어두었다. 인기척도 불손할까 싶어 합장만 하고 돌아선다. 봉명산 사거리 휴식소엔 산객들이 분주하다. 바람은 줄줄이 매달린 망개에 젖을 먹이고 있다. 봉명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왼쪽 둘레길로 접어든다.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이 길은 칠암자 내내 어깨를 나란히 둘만큼 넉넉한 품을 내준다. 숨이 싹트고 쉼을 뉘는 안식처이자 삶을 엮는 생명길이다. 아내는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 숲에선 예의다. 아카시아 향기가 스며든다.

약수터를 지나 대숲 음향을 따라 내려서면 계곡을 만난다. 앙증맞은 징검다리가 손목을 끈다. 아내는 주저앉아 다슬기를 잡는다. 발을 담그기에 안성맞춤인 이곳은 나만의 아지트다. 울창한 야생차밭을 지나면 서봉암이다. 국화가 예쁘기로 소문난 서봉암은 곤양의 구릉들이 마실 오는 풍경 좋은 절집이다. 개짓는 소리가 살갑다. 근방 양지바른 야생차밭 기슭에 용산리 절터가 있다. 신라 눌지왕 때 지어진 큰 사찰이었다니 복원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달빛처럼 차향이 순결하고 은은하다. 솔숲 오르막을 지나 길은 능선 둘레길로 이어진다. 간이의자가 많아 쉬며 놀며 바람과 마음 나누기에 좋다. 아내의 뒷모습을 앵글에 담는다. 오십을 훌쩍 넘기면서 죽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걸을 수만 있다면 아무 걱정 없다. 동행과 나눔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물고뱅이 둘레길 삼거리를 지나면서 길은 깊어진다. 키다리 수목들이 사각거린다. 산수국이 곧 불을 밝힐 듯 깜빡거린다. 돌탑 쌓은이의 공덕이 예뻐서 사진을 찍는다. 오른쪽 숲 너머 향내음이 이끈다.

단애 같은 석벽을 따라 올라서면 정토를 만난다. 아내의 단골집 보안석굴암이다. 고려시대 석불로 투박하고 단조로운 외형과 달리 내부엔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부처님이 살고 있다. 온화한 미소가 안겨온다. 무언의 표정 하나로 세상에서 제일 많은 펜을 이끌고 계시니 지혜가 추앙감이다. 석굴은 안전진단 중이어서 유리문 밖에서만 알현할 수 있다. 고목들이 협시보살처럼 보초를 서고 있는 석굴을 뒤로 하고 칠암자 코스의 대미인 조망터를 찾아간다.

남쪽으로 몇 걸음 내려오면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 큰 바위를 만난다. 시루바위다. 펑퍼짐한 게 엄마 품 같다. 봉긋한 산들이 풍선처럼 떠 있고 나지막한 논밭들이 소처럼 놀고 있는 풍경이 고향을 닮았다. 나의 최고 조망터다. 이제 칠암자의 새 명물을 만날 차례. 이정표를 따라 300미터쯤 사면을 돌아가면 탁 트인 비탈에 고행 중인 갓바위를 만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와 햇살과 바람이 천혜의 조각품을 새겨 놓았다. 모양은 어눌해도 명징한 기운이 감돈다. 조망 최고 맛집이다. 한바퀴 돌며 잘 관찰하면 메기, 아바타, 반달가슴곰, 붕어 등 영물들을 만날 수 있다. 바위와 나무들은 모두 부처 같아서 허투루 대하지 말아야 한다. 가막살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가로등 켠 듯 숲이 훤하다. 달달한 바람라떼 한 잔 담아 들고 돌아온다.

이용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다솔사 보안석굴암이 신록속에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다솔사 물명산의 새 명물인 갓바위 너머로 옛고을 곤양의 들판과 와룡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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