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경일칼럼]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6.1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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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헌 변호사
이송헌 변호사

 

저는 변호사입니다. 공부도 잘했을 것이라고 간주당하고, 상당히 고난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로도 간주됩니다. 그런데 고민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행복한 사람들은 저를 찾지 않는다는 겁니다. 뭔가 엄청난 고민이 있는 사람들만이 저를 찾습니다. 작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 역시 저를 찾지 않습니다. 저에게 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큰 고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하기가 어렵습니다. 식당 주인들이 하듯 “어서 오세요”라고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소송이 제기돼 찾아 온 사람, 사기 피해자나 상대방이 돈을 안줘서 애가 타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극심하게 하고 온 사람도 있고,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영혼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배웅을 할 때도 “감사합니다”라고 하기 어렵고, “또 오세요”라고 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또 오세요 라는 인사는 마치 ‘당신에게 불쾌한 일이 또 생기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 되니까요.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오늘 하루 힘들게 사셨을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갑니다. 상쾌하게 행복하기‘만’ 한 하루, 그런 거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25세 청년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25세의 일제시대를 살아가던 청년은 힘들었겠지만, 봄 신령이 지핀 듯 다리를 절며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하루하루를 걸었습니다.

중국은 우리를 천년이 넘게 깔보았고, 우리의 진귀한 보물과 사람들, 특히 여인들을 강탈하고 인질로 잡아갔으며, 일본은 조약으로 위장해 강제 합병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지금의 자랑스러운 경제 대국 대한민국으로 이끌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러분들은 모두 잘 하셨고, 다들 능력자들이십니다.

제 경험상 인생은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다 힘든 일들입니다.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원래 인생이 힘든 겁니다.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합니다. 힘든 게 정상입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1등이라고 합니다. 최장수 장관을 지낸 전 부총리의 배우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유명인의 남편이고, 빼어나게 외조를 잘 하던 훌륭한 남편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고인이 무슨 사유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 봅니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엄청난 멸시와 탄압을 이겨내고,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침략전쟁인 한국전쟁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토록 엄청난 경제성장과 정치·사회적 발전을 이룬 이 축복받은 나라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겁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나치게 ‘빨리 빨리’ 서두르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상당히 살 만 합니다. 어제보다 정확히 1㎝만 더 잘살면 된다면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나에게 소송이 제기됐다거나 구속 영장이 청구되는 날벼락이 있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오늘보다 내일 1㎝만 더 괜찮게 살아보면 됩니다. 기소돼 재판을 받아도, 구속의 위험이 있어도 당당하게 살아가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월급을 착착 받아가는 국회의원들도 있지 않습니까. 위기가 와도 견뎌야 합니다. 스스로 세상을 등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다리를 절더라도 한발 한발 온 몸에 풋내를 띠며, 봄 신령이 지핀 듯 하루하루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히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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