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맙소사, 어처구니가 없네요!
[경일칼럼]맙소사, 어처구니가 없네요!
  • 경남일보
  • 승인 2024.06.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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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재벌 2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체불임금 420만 원 때문에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던 배 기사(정웅인 분)를 보고 어이없어하며 던진 말이다.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져, 그럼 일을 못하죠? 그걸 어이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극 중 조태오의 말처럼 ‘어이’ 혹은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은 어떤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힐 때 쓰는 관용적 표현이다. 다만 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파급효과랄지, 몇 줄 안 되는 대사 바람에 ‘어처구니=맷돌의 손잡이’라는 설명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버린 것은 참 아쉽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명사로 등재돼 있다. 또, 맷돌의 손잡이에는 엄연히 ‘맷손’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어떤 경위로 어처구니와 맷손이 같은 단어로 굳어졌는지 모르나, 1910~1920년대에 발행된 신문에서 엄청나게 큰 기계나 굴뚝을 가리켜 ‘엇처군이 기계’ 혹은 ‘어쳐군이 굴뚝’라고 쓴 것을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 더 정확해 보인다. 1938년 발행된 ‘조선어사전’과 1957년 발행된 ‘큰사전’에도 어처구니는 ‘키가 매우 큰 사람의 별칭’ 혹은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과 사람’으로 올라 있다.

물론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을 감안하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맷돌의 손잡이가 없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쓰는 말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두부를 해 먹으려고 30리 떨어진 장에서 콩을 사 왔는데, 아뿔싸! 맷돌에 손잡이가 없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있나, 식으로 쓸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어원으로 어처구니가 궁궐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세운 작은 토우(土偶) 즉 잡상(雜像)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도 있다.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 숭례문 지붕에는 악귀나 화재를 쫓는 주술적 목적의 토우가 여럿 세워져 있는데, 이것들은 당 태종이 밤에 귀신을 쫓기 위해 궁궐 지붕 위에 세워뒀던 병사들의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따르면, 대개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의 모습을 본뜬 토우를 순서대로 세웠다 하고, 용, 해치, 기린, 사자, 봉황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했다고도 하는데,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궁궐 건축이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아무리 궁궐을 멋지게 지었어도 지붕에 잡상이 없으면,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어처구니는,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맷돌 손잡이 혹은 궁궐 지붕의 잡상 등 다양한 유래를 가진 말이면서, 또한 그 유래가 전부 근거 없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거나 당할 때 ‘세상에 맙소사!’, ‘하나님 맙소사!’처럼 탄식조로 내뱉는 감탄사 ‘맙소사’는 그 어원이 너무나 뚜렷한 말이다. ‘맙소사’는 ‘말다’의 어근과 높임의 명령형 어미 ‘-ㅂ소서’가 함께 쓰인 말로서, ‘(그리) 마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와 유사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해야 할지, 최근 정치권발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하도 많이 접하다 보니, “맙소사, 어처구니가 없네!”라는 말이 버릇처럼 입에 붙어버렸다. 국민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맷손의 다른 이름이어도 좋고, 궁궐 지붕의 잡상이어도 상관없다. 기나긴 역사의 질곡을 거쳐 드디어 선진국 반열에 이른 우리나라가 더 큰 변화의 맷돌을 돌려야 할 시기에, 비로소 궁궐 건축을 마무리하고 벽사진경의 토우를 세워야 할 시기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것이 심히 우려되고 염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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