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리 경상국립대 교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가 내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APEC은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각료회의로 출발했지만 1993년부터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1990년대만해도 APEC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매우 높았으나, 이후 다소 약화됐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역할이 위축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안보 및 공급망 협력이 중요해지면서 APEC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조만간 APEC 정상회의 주제와 개최도시를 선정해야 한다. 올해 초부터 경주, 인천 및 제주가 정상회의를 유치하기 위해 특별 조직까지 꾸려가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주는 고도로서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의 문화를, 인천은 신도시 송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회의와 교통 인프라를, 제주는 우수한 관광자원 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부산도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기를 희망했었다. 부산은 20년 전인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도시로서 경험과 우수한 인프라를 내세웠다. 하지만 연이은 개최에 대한 경쟁 도시들의 비판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지자체 중에서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에 가장 경쟁력이 높은 지역은 서울임에 틀림이 없다. 서울은 회의장, 숙박시설, 통역, 교통, 문화 등에서 다양한 인프라를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은 도시 간 균형발전과 지방경제 활성화 논리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11월 정상회의 개최 준비를 위해 내년 한 해에만 무려 200여 개의 각급 회의 및 부대 행사가 정상회의 개최지 및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리게 된다. 정상회의 주제에 따라 달라지지만, 외교, 통상, 에너지, 중소기업, 환경, 관광, 여성 등의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들의 회의, 고위관리(SOM) 회의, 각종 포럼 및 문화행사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이벤트가 일 년 내내 개최된다.
다시 말해서 내년에 개최될 우리나라 APEC 정상회의는 결코 정상회의 개최지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상회의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를 제외하면 부대행사 유치를 위한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국내 지자체의 국제화 수준이자 역량일 수 있다. APEC 장관회의는 말할 것 없고, 부대행사만으로도 전국의 언론이 개최지와 행사를 보도하게 된다. 덤으로 지역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지자체장은 인사말이나 축사 등으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 홍보를 할 수 있다. 경남도는 물론이고 창원시, 진주시 등은 APEC 부대행사 유치를 통해 지자체 홍보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가 관장하는 APEC 정상회의 혹은 부대행사를 개최하게 되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약 30년 전부터 국제회의, 전시회, 관광 등을 총칭하는 마이스(MICE) 산업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MICE 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고품질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전통산업 의존도가 높은 경남지역은 MICE 산업을 확충할 필요성이 있다. 경남도 차원에서 MICE 산업 육성 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도시의 MICE 정책 역량을 제고시켜 나가는 행정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년도 APEC 관련 주요 일정을 파악하고, 경남도와 지자체가 개최할 행사를 선별하고 중앙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유치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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