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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편 <1>1. 정지된 시간
이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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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9  15: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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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야 한다. 멈춤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뒷산을 오르고 있던 용진은 까만 양복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땀을 훔치다 말고 안고 있던 흰 상자로 눈길을 당겨갔다. 그저께 유명을 달리한 노모의 뼛가루가 들어 있었다.   

강에 뿌려 달라고 했으면 무더위가 제철을 만난 7월의 허리에 산으로 오르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산바람에 신들린 울창한 숲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주제모를 의혹이 습관처럼 용진의 머리에 뒤엉켰다. 뼛가루의 주인이 친어머니인가 하는.     

기억이 시작되기 훨씬 그 이전부터 용진은 서울에서 고모와 함께 지냈다. 고향인 학동에서 평생을 보낸 어머니는 가끔씩 다니러왔을 뿐이었다. 그리곤 얼굴만 보여주고 숫제 시골로 달아나 버리곤 했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보지 못한 탓일까. 쉰 중반이 되어서도 용진은 뜨뜻한 아랫목 같은 어머니의 가슴팍이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용진은 아내의 얼굴을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밤을 꼬박 밝히다 지친 새벽달처럼 맥없이 허옇다. 그는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손끝으로 찍어냈다. 결혼하여 25년이 넘도록 불평 같은 건 입에 담을 줄도 몰랐던 그녀는 작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아내는 혼자 남게 될 용진이 마음에 걸렸을까. 재혼하겠다고 약속해 달라며 숫제 강요하듯 말했다. 강제로 등을 떠밀 듯 뉴질랜드에서 터를 잡고 사는 아들 유민에게 가는 것도 좋겠다고 하며 가여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늦은 나이에 남의 나라로 갈 것이 불현듯 걱정 될 땐 어머니가 홀로 지내고 있는 시골집을 들먹이기도 했다.

산꼭대기를 머리에 인 암벽이 길을 막으며 용진 앞에 나타났다. 절망이 느껴질 정도로 경사가 급한 것은 아니었다. 바위를 휘감고 도는 칡넝쿨을 미끄럼 방지용으로활용하면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용진은 그냥 눈길을 거둬들였다. 가능하면 높은 데로 올라가서 뿌려달라고 하던 어머니의 유언이 귓가에 맴돌았다. 안고 있는 상자가 애물처럼 느껴졌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용진은 술로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었다. 평생 몸담고 있던 직장에서도 명예퇴직을 한 뒤여서 시간에 얽매여 긴장할 이유도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유민에게 갈 궁리를 했을 땐 어머니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함께 떠나자고 전화로 슬쩍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이유는 남의 땅에 뼈를 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술기운을 빌어 용진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쌓인 정이 모기눈물만큼도 없는 터여서 취기에 실린 이끌림도 낯선 감정이었지만 어쨌든 갔다.

 “시골집에 내려와 살겠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는 등의 머리말부터 늘어놓을 기분이 아니어서 용진은 혼자 결정한 사실을 통보하듯 바로 속을 열어보였다. 

어머니는 뜸도 들이지 않고 단호히, “그건 안 된다.”라고 했다.

용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오로지 어머니라는 이유 때문에 등을 돌리며 달아나는 자식도 목 놓아 애타게 부르며 돌아오라고 부르짖는 어머니들을 많이 보아왔다.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도 그랬고 남의 어머니들은 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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