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1>
오늘의 저편 <21>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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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넘겨짚기까지 하고 있었다. 다껜지 여우대가리인지 하는 그 순사 놈은 진석이를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어머닐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진 못할 것이라고.

 고향집으로 달려가 있는 마음을 동숙은 도로 거둬들였다. 섣불리 나섰다간 그녀 자신의 집이 왜경들에게 노출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가끔씩 누이의 집에 들렀다 가곤 하는 진석을 위해 동숙은 계속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시골집에 가 보시라니까요.”

 형식은 불뚝성을 내듯 목청을 갑자기 높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증폭된 화를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리기까지 했다.

 ‘공개처형을 받을 것이란 말을 왜 못하는 거야?’

 형식은 또 자신을 나무랐다.

 “왜 울 어머니 돌아가시게 생겼더냐?”

 동숙은 느긋한 얼굴로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뇨. 그런 것이 아니고요.”  

 형식은 궁둥이를 번쩍 들었다가 도로 털썩 놓았다.

 “그래, 세상에 고향누나보다 더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동숙은 부처보다 더 편안한 얼굴로 웃음을 보였다. 삶에 지친 형식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석이 형에게 살인누명을 씌우고 있단 말이에요.”

 형식은 울컥 토해내듯 그렇게 말해버렸다.

 “뭐라고?”

 동숙은 갑자기 귀가 멍멍해지는 것 같았다. 닭 모가지도 비틀 줄 모르거니와 강아지한테도 발길질 한번 할 줄 모르는 동생이었다. 어쩌다 사람을 죽였단 누명을 쓰게 되었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시골에 가 보세요.”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동숙을 보며 형식은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자세히 말해 봐. 우리 동생이 누굴 죽였냐 말이다. 진짜 죽인 건 아니지? 더러운 새끼들이 뒤집어씌운 누명일 뿐이지?”

 동숙은 이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경우가 달랐다. 어머니의 목숨이 정말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었다.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닌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그, 그러니까 그것이…….”

 형식은 학동에서 듣고 온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다 풀어놓았다. 여주댁의 처형날짜까지 훌훌 다 털었다.

 “말도 안 돼!”

 다 듣기도 전에 동숙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지께서 불과 며칠 전까지 생존해 있었단다. 만나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털끝만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나환자였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또한 어머니의 존재는 여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긴 세월동안 자식한테까지 속일 수 있었을까.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빨리 고향집에 가 보세요.” 

 형식은 조금은 홀가분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헛?허?허?허허허…….”

 동숙은 형식이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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