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
오늘의 저편 <24>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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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민숙 아버지, 여보, 민숙 아버지 날 데려가요. 제발, 제발 날 데려가요. 죽었으면 죽었지 민숙이 년이 문둥이 자식하고 사는 꼴은 못 봐요. 못 봐!’

 팔다리를 활짝 펼치며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무심한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얼굴로 얼빠진 세상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기에……?’

 어이없이 웃다간 어이없이 울기도 했다.

 학동읍내에 도착한 동숙은 곧장 주재소로 방향을 잡았다. 누군가에게 꽁무니를 붙잡힌 사람처럼 앞으로 발걸음을 쉽게 당겨가진 못하고 있었다.

 형식이가 다녀간 뒤로 동숙은 마음이 시끄럽고 머리는 뒤숭숭해서 견질 수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의 암술처럼 불거지는 건 아버지의 존재가 혐오스럽다 못해 끔찍하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학동에는 절대로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아버지의 무덤조차도 찾기 싫어서.

 아무튼 지금 그녀는 주재소로 가고 있었다. 이유가 딱 한 가지는 있었다. 처형당하기 전에 그 모습을 딱 한번만 보자는 그것.

 마음을 솔직하게 툭 털어놓으면 그녀는 어머니한테도 있던 정 없던 정 다 떨어져 버렸다. 긴긴 시간 동안 남편을 숨겨 두고 살아야 했던 한 많은 그 삶에 대해 동정심이 불뚝거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여자로서 그 아픔을 이해해 줄 수 있었더라도 조금은 덜 괴로웠을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주재소의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며 동숙은 무작정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야?”

 다께는 부채질을 하다 말고 노란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이 쌍놈의 쪽발이 새끼야, 동방예의지국에 왔으면 높임말부터 배워라. 반말지거리는 아무한테나 지껄이지 말고 네 놈 나라 안방에 가서나 실컷 써먹던지 말든지, 이 잡놈의 썍끼야!’

 다께에 대하여 형식에게 들은 말이 있었던 동숙은 그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아보았다. 눈알만 누렇게 잘못 익어버린 것이지 얼핏 봐도 나이를 많이 처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속마음을 잘도 숨기고는, “다께상, 삼복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라고 특유의 아양을 부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별안간 속이 느글거리는지  남몰래 입을 씰룩거렸다.    

 “무슨 일이냐 말이다?”

 짙게 분칠한 동숙의 얼굴에 눈을 고정하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조율했다.

 “이년은 경성에서 기생집을 하고 있습죠. 아휴, 정말 덥다 더워.”

 동숙은 그에게 겨드랑이가 빤히 보이도록 한쪽 팔을 넌지시 들어 올리며 몸을 옆으로 애교스럽게 비틀었다. 모시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오목한 그곳의 보드라운 속살에 까만 털이 몇 가닥 꼬여 있었다.

 “경성에서 기생집!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그녀의 겨드랑이를 힐긋 곁눈질한 다께는 무심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네놈 아랫도리가 지금쯤 대가릴 쳐들겠지?

 괘씸하게 웃으며,

 “다께 상 고생하는데 위로도 해 드림 겸…….”

그녀는 말꼬리를 좀 끌었다.

 “위, 위, 위로는 무슨 위로?”

 다께는 당황히 말을 더듬었다. 불뚝거리는 아랫도리를 주체할 수 없는지 얼굴이 벌개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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