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44>
오늘의 저편 <44>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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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엉터리야.”

 낮잠을 자다 말고 부스스한 머리칼로 달려 나온 동숙은 팔짱을 끼곤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민숙아,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야 해.’

 대문 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진석의 두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떠나는 민숙의 뒷모습이라도 훔쳐보려고 했던 마음을 바꿔 골목길 밖으로 달아났다.  

 “죽어버릴 거야.”  

 그렇게 씨우적거리던 민숙은 뜸도 들이지 않고 혀를 깨물어버렸다.

 “이, 이년이!”

 그와 등시에 화성댁은 비명을 지르며 한손으론 민숙의 입아귀를 사납게 틀어쥐며 다른 한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민숙은 눈을 허옇게 떴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절규하던 화성댁도 정신을 놓아버렸다.

 배웅을 나왔던 여주댁과 동숙은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가 믿기지 않는 듯 동공만 당황히 굴려댔다.

곧 정신 잃은 모녀의 어깨를 잡아 흔들고 찬물을 끼얹고 하며 난리법석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민숙은 널브러져 있는 화성댁을 보곤 통곡했다. 집으로 돌아갈 테니 제발 눈 좀 떠 보라고 애원했다.

 ‘이건 민숙이 년 목소리인데……?’

 화성댁은 귓바퀴를 조금 움직였다.

 ‘우리 모녀 나란히 저승으로 와 버린 걸까? 차라리 잘 되었어. 암 잘 되다말다.’

 화성댁은 멍한 눈을 조금씩 움직이며 딸을 찾기 시작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민숙은 화성댁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곤 마음껏 울음을 울었다.

 ‘우리 모녀 아직은 안 죽은 것 같구먼.’

 화성댁은 눈물범벅인 민숙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여름 오후의 햇살이 공기를 지글지글 끓이고 있었다. 

 하룻밤 묵고 가라는 여주댁의 호의를 맥없는 웃음으로 거절하고 화성댁은 경성을 떠났다. 보따리를 가슴으로 꼭 끌어안은 민숙이는 어머니 뒤를 묵묵히 따라가고 있었다. 

 ‘오빠,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 

 민숙은 한사코 같은 소릴 되뇌고 또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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