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가슴이 얼른 진정이 되지 않는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후사정을 따지고 보면 화성댁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었다. 사태의 발단을 모르고 있는 노파로선 일을 만든 사람은 나팔댁이고 수습한 사람은 화성댁으로 이렇게 생각을 딱 고정시켜 둘 수밖에 없었다. 솥이 탈 때까지 그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던 아낙도 나팔댁이었고 평소에 떠벌리기 좋아하는 그녀에게 통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민숙 어머니, 양심이 있으면 어디 말을 좀 해봐요?”
나팔댁은 화성댁을 노려보았다.
“아니 가만있는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라는 건가요? 물을 부어야 한다고 말할 땐 귀를 선반 위에 모셔놨던가요?”
화성댁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싸늘하게 대꾸했다. 양심이 꿈틀거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흥, 좀 당해 봐요.’
내심으론 이렇게 중얼거렸다. 민숙을 마음대로 씹고 다닌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분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하늘도 무심치 않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이런 기회에 보복을 좀 하고 싶은 것이었다.
“뭐라고요? 부지깽이만 내 손에 쥐여 줘 놓고선……!”
먼저 한 대 치기라도 하려는 듯 나팔댁은 팔을 둥둥 거둬 붙이며 화성댁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이 사람이 정말! 똑바로 살아요. 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뭣? 내 딸이 뭐 어때서?”
요즘 민숙이 말만 나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화성댁이었다. 앞뒤 없이 나팔댁의 머리끄덩이를 홱 잡아챘다.
“아니, 이게 무슨 짓들인가? 싸우려면 내 집에서 나가. 저기로 나가서 실컷 싸우든지 말든지 해.”
화성댁과 나팔댁이 머리끄덩이를 붙들고 엉겨 붙자 형식이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그녀들을 사립문 밖으로 밀어냈다. 어디서 그런 완력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들이 내 새끼 경사에 초를 쳐도 유분수지 괘씸한 것들!’
할머니는 싸우는 두 여자를 사립문 밖으로 내쫓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귀한 소금을 한 바가지 떠와선 뿌리기까지 했다. 굵게 패인 주름살 사이사이로 근심걱정이 꺼림칙하게 어리고 있었다.
“어르신 액땜한 셈 치세요.”
사려 깊은 아낙이 할머니를 위로했다.
“그려, 자네 말이 백번 옳아. 옳고말고.”
할머니는 액땜이라는 그 말이 무척 맘에 든다는 듯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들 내외를 돌림병으로 한꺼번에 잃고 눈물과 젖동냥으로 키운 손자였다.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그런 손자가 아니던가. 이제 짝을 지어 주었으니 아들딸 많이 낳고 제발 아무 탈 없이 수명을 누리며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