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새신랑은 사람 아니니?”
형식은 기어이 화풀이를 하고 말겠다는 듯 길옆에 늘려있는 돌멩이를 주먹가득 집어 들었다.
“아이고, 이 고집불통!”
민숙은 그의 손을 놔주고 말았다.
‘순사 온다.’라는 말만 들어도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순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해방이 되었으니 너나없이 억눌렸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몰매를 맞고 있던 앞잡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던 비명은 병든 돼지의 꿀꿀거림으로 작아지다가 이윽고 잠잠해졌다.
“이제 쪽발이 놈들 쳐 죽이러 갑시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래요. 쪽발이 새끼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때려잡읍시다.”
또 누군가 목청껏 맞장구를 쳤다.
그 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은 우르르 읍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주제소로 가겠지?”
민숙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우같은 쪽발이 순사 새끼들 다 달아났을 걸.”
형식은 씨우적거리면서도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죽었을까?’
역시 주재소는 텅 비어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분통이 터진다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기 가슴을 두들겨대던 어떤 남자가 걸상을 왁살스레 집어 들어선 사정없이 밖으로 던졌다.
박살이 나는 의자를 고소하다는 눈길로 흘겨보던 사람들은 왜놈 손길이 닿은 것이라면 죄다 부숴버리고 말겠다는 듯 기물들을 던지고 발로 짓이기고 하며 화풀이를 해댔다.
‘모두들 미쳤어.’
눈에 벌건 핏줄을 세우며 설쳐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숙은 왠지 모를 아찔함을 느꼈다.
“경성은 괜찮을까?”
별안간 형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그러니?”
반문하는 민숙의 얼굴에도 직감적은 불안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애들, 애들을 앞잡이로 오해하면?”
형식은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너희 미곡상 점원들 말이니?”
민숙은 입언저리를 파르르 떨었다. 왜인과 옷깃만 스쳐도 앞잡이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왜인이 버리고 간 미곡상을 그대로 맡아 장사를 하고 있으니 끄나풀이었다고 오해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가 봐야겠어. 누나 잘 있어.”
형식은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기차역 쪽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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