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60>
오늘의 저편 <60>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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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으, 무, 물…….”

 심한 갈증을 느끼며 철주는 눈을 떴다.

 “엉, 철주야!”

 졸음에 못 이겨 또 목으로 방아를 앞으로 쿡 찧던 형식은 반가움에 겨워 눈을 번쩍 떴다.

 “목이 말라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철주는 건조한 목소리로 갈증을 호소했다.

 “그, 그래! 어서 마셔.”

 형식은 물 사발을 그의 코앞에 들이댔다. 살아난 그가 무조건 감사해서 눈물이 비적비적 나올 지경이었다.

 “영식이는요? 아, 아얏!”

 철주는 생각 없이 무작정 몸을 일으키려다 고통스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고 있었다.

 “꼼짝 말고 누워 있어. 영식이는 정말 어떻게 된 거니?”

 형식의 목소리는 제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배달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세상이 뒤집어진 판에 겁도 없이 배달은 왜 간 거야? 그때가 언젠데?”

 형식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소문이 어제 오늘 나돈 것이 아니었다. 하도 일찍부터 그런 말이 떠돌고 있어서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있었다.

 “저녁 때 쯤…….” 잔뜩 주눅이 든 철주는 말꼬리를 흐렸다.

 “어쩌지? 후, 후, 후…….”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던 형식은 충동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길거리에 버려져 있을 영식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영식의 집으로 가 볼 작정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린나이에 동생 둘을 책임지고 있는 소년가장이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다가 그나마 형식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세 식구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된 거였다.

 “밖에 나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철주가 급히 소리쳤다. 

 “걱정 마.”

 형식은 방금 전 한약방을 다녀올 때 써 먹었던 방법을 떠올리며 철주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영식의 집은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에 있었다.

주소가 없어서인지 막상 그곳까지 간 형식은 대충 알고 있는 위치만 가지고 집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바로 알아차렸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 문 저 문 앞을 기웃거리다간 허공에다 대고 한숨을 토했다.

가깝거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8월 16일의 첫새벽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형식은 영식의 귀를 의식하며 일부러 줄지어 서 있는 판잣집을 보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영식이가 반가이 달려 나와 주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그랬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길거리로 몰려나가고 없는지 시끄럽다고 눈을 부릅뜨며 나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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