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66>
오늘의 저편 <66>
  • 이해선
  • 승인 2012.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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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의 햇살이 하루의 더위를 푹푹 삭이고 있었다.

 의식을 또다시 놓아버린 민숙의 몸은 불덩어리였다. 화성댁은 파뿌리와 댓잎을 함께 넣고 달인 물을 줄기차게 딸의 입에 떠놓곤 하고 있었다.

 “이년아, 한 모금이라도 삼켜라. 삼켜야 산다!”

 열을 내리게 하는 조제약물은 입가로 주르르 흘러내릴 뿐이었다.

 “이년아, 정말 죽고 싶니?”

 눈꺼풀을 마구 까뒤집으며 마루로 나온 화성댁은 나무뿌리가 툭툭 불거지는 주먹으로 앙상한 가슴을 툭툭 쳤다.

 “이년아, 어디 걸릴 병이 없어서 지랄개떡 같은 상사병에 걸리고 지랄이니?”

 하늘에다 대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이 떡을할 웬수 놈아, 육시랄, 염병할 놈아. 당장 내 딸 살려내. 천금 같은 내 새끼 살려내란 말이다.”

 허공으로 다가온 허여멀쑥한 진석의 얼굴을 향하여 있는 욕 없는 욕 죄다 긁어모아 퍼부어댔다.

 상사병엔 약도 없다고 했다. 통 웃지 않을 때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밥도 잘 안 처먹고 맥 빠진 꼴로 밤하늘에다 눈물을 뿌려대곤 할 때 그 속을 훑어보아야 했다. 화성댁은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덮어두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니, 이건? 왜놈 순사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자전거 바퀴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화성댁은 순간 기겁을 했다. 이내 희망을 튀기며 숨도 안 쉬고 밖으로 내달았다.

 “아주머니!”

 형식이가 먼저 화성댁을 보았다.

 “어, 어, 엇, 그래! 이제 오는가?”

 화성댁은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누구 기다리세요?”

 형식은 자전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아, 아니. 새색시 눈 빠지겠구먼.”

 화성댁은 민숙의 방을 곁눈질하며 돌렸던 목을 그의 집 쪽으로 끌어갔다.

 “아, 예.”

 서둘러 자전거에 올라탄 형식은 ‘새색시!’ 직감적인 의혹에 사로잡히며 머리를 갸웃했다.

 ‘아주머니는 우리 할머니께서 위독하다는 걸 모르시나?’

 형식은 새색시라는 그 낱말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욕심 부릴 걸 부려야지. 저렇게 저 각시한테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흡사 달아나듯 집으로 향하는 형식의 뒷모습을 보며 화성댁은 주제모를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아,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앞뒤 없이 변덕을 부리듯 화성댁은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형식의 뒤를 부리나케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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