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평화의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12.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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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꽃은 꺾지 말아라.” 마당가 예쁘게 피어난 수선화에 손을 대려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합천에 살고 있는 친구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친구의 친척분이 오셨다. 손자를 데리고 자주 놀러 오신다는 강씨 할머니다. 친구는 할머니 몫의 밥과 숟가락을 급히 챙겨왔지만 왠지 함께하는 식사를 불편해 하셨다. 곧 강씨 할머니가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른팔이 마비돼 젓가락 사용이 힘들다며 내게 미안해 하셨다.

강씨 할머니는 7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 아버지는 합천에서 살다가 너무 가난해 일본에 먼저 건너가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요구하는 공출 때문에 일곱 가족은 입에 풀칠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척이 먼저 가서 안착해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간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고등과 2년을 다닌 할머니를 취직할 수 있도록 적극 추천해 준 사람이 담임선생님이다. 그 당시 인기 높은 직장에는 한국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강씨 할머니의 자금국 은행 합격은 기적이었으며 신분상승을 보장해 주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해 책상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창문 밖에서 ‘번쩍’ 했다. 눈을 돌리는 순간 ‘퍽’ 하고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무실 안으로 총탄처럼 날아들었다. 급히 책상 밑으로 숨었지만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려앉은 건물 잔재에 깔려 죽은 듯 있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하늘이 캄캄하고 검은 기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직장의 동료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무도 없었다. 겨우 군인에게 발견돼 섬에 있는 부대로 가서 임시치료를 받게 됐다.

열 여섯 처녀얼굴은 뜨거운 물에 푹 삶은 것처럼 화상을 입었다. 유리가 박힌 몸은 움직이질 않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지내야 했다.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 바지를 부여잡았는데도 딸을 알아보고 못했다. 얼마나 얼굴이 일그러졌는지 아버지는 딸을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었다. 그러다가 미군들이 처녀들을 잡아간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아 밤에 도둑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생사확인조차도 못하고 한국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인연이었는지 나가사키에서 노역을 하다가 원폭을 맞아 합천 읍내로 돌아온 남자를 소개 받았다. 결혼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흉측한 얼굴로는 먹고살 방도가 없었다. 남편은 원폭 후유증으로 일찍 죽고 자식 둘을 키웠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태어나자마자 계속 울어 병원에 가 보니 피부가 이상했다. 그 옛날 원폭을 맞은 16살 때 자신의 피부와 꼭 닮아 있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 아이가 얼마나 가려워하는지 보는 사람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밤마다 우는 아이를 업고 달래다 보면 새벽이 밝아왔다. 그 아들이 결혼해 마당에 놀고 있는 저 아이의 아빠라고 했다.

지난달 26~27일 ‘2012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를 위해 세계 각국 정상들이 서울에 모였다. 그때 TV뉴스를 보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계획을 발표해서 불안했는데, 핵 테러의 위협을 막고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을 위한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니 위안이 되네. 세계 시민들 앞에 엄숙한 책임을 약속하는 회의가 돼야 할 텐데.”

이처럼 ‘2012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를 바라본 국민들의 시선도 할머니처럼 예민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각 나라의 대표들이 인류의 참된 행복과 안전한 미래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의가 국제간의 공조와 구체적인 의지, 행동을 도출할 수 있도록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마당에서 수선화를 꺾지 않고 잘 놀고 있다. 수선화 꽃말이 ‘나를 잊지 말아요’ 였던가. 평화의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마당에서 수선화를 만지고 노는 저 아이의 보들보들하고도 정상적인 열 개의 손가락 끝,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생을 잇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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