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사립문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의 뒷모습을 보며 화성댁은 또 가슴을 툭툭 쳤다.
곧장 인동넝쿨을 찾아 뒷산으로 올랐다. 인동넝쿨 달인 물도 열을 내리게 하는데 효능이 있었다.
밤이 잘도 깊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의 컹컹거림이 밤의 고요를 흔들고는 했다.
경성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형식은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것일까.
새색시의 몸엔 손도 대지 않고 혼자 잠자리에 드는가싶더니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정자는 뼛속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을 짓씹으며 잠든 신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어쩌면 저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며 참다간 급기야 어깨를 들먹이며 서럽게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아가야, 그만 자거라. 오늘만 날이겠냐?”
신방 앞에서 애를 태우며 서성이고 있던 형식의 할머니는 목소리를 낮추어 손자며느리를 위로했다.
당장이라도 방안으로 달려 들어가 손자를 깨워 앉혀 놓고 신랑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라고 우격다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놈이 또한 안쓰러워 꾹 누르고 있었다.
“예. 할머니.” 모깃소리로 대답한 정자는 신랑이 독차지하고 있는 원앙금침 속으로 숨을 죽이며 들어갔다.
하필이면 그때 신랑이 두 다리를 허공으로 번쩍 들어 올리더니 자전거 페달 돌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맨 방바닥으로 몸을 피한 각시는 황당한 눈으로 신랑을 구경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화성댁은 형식의 집 사립문 안을 기웃거렸다. 도무지 열이 내리지 않는 딸을 보며 밤이 새도록 한과 절망을 한숨으로 버무려 신음하다간 결국 마음을 굳히고 말았다.
민숙이 년을 진석에게 줄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우선 딸을 살려놓고 봐야했기에 나중 일을 앞당겨서 고민하고 할 여유가 없었다.
진석에게 제일 빨리 연락을 넣어줄 사람은 형식이 뿐이었다.
‘헛, 간밤에 깨가 쏟아졌던 모양이군!’
신랑 각시가 잠든 그 방의 방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어서 화성댁은 은근이 부아가 치밀었다.
‘새색시가 시집 온 첫날부터 늦잠을 자냐?’
형식이가 먼저 방에서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거니와 샛별의 눈빛이 아직은 초롱초롱하기만 해서 늦잠타령을 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화성댁은 새색시의 험담을 늘어놓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지고 있었다.
‘심보가 어찌 이리 고약하게 생겨 먹었누? 시앗 년한테 서방 빼앗긴 본처보다 더 마음보가 배배꼬여 먹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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