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1>
오늘의 저편 <71>
  • 경남일보
  • 승인 2012.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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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라고 반문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철없는 기생들을 끼고 장사를 해 온 덕택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사랑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것들을 많이도 보아온 그녀였다.

바로 얼마 전에는 돈 벌어서 동생 공부시키겠다던 기생이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만 찾고 있어요.”

“방금 전에 들어와 잠들었는데…….”

진석의 방을 곁눈질했다.

“형, 지금 잠이 와요?”

방문을 와락 열어젖힌 형식은 진석의 멱살부터 움켜쥐었다.

“누, 누구야? 너, 형식이 아니니?”

잠이 덜 깬 진석은 눈을 멀겋게 뜨며 형식을 보았다.

“민숙이 누나 살려내요. 당장!”

사태의 심각성을 빨리 일깨워주기 위해 형식은 소리부터 꽥 질렀다.

“뭐라고?”

“빨리 학동으로 가잔 말이에요.”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

진석은 형식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따지고 보면 민숙일 사랑한 죄밖에 없는 그를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얘들이 지금 왜들 이러니?”

동숙이가 나서서 일단 둘을 떼어놓았다. 그리고는 진석에게 무조건 학동에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빨리 준비하세요.” 응원군이 생기자 제바람에 설움이 북받쳐 오른 형식은 기어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민숙이 어머니께서 날 받아 주실까?”

간단하게 윗옷을 걸치며 진석은 새삼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 타기나 하세요.”

형식은 자전거에 먼저 올라탔다.

둘을 배웅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 동숙은 비밀스런 희소식이라도 받아 쥔 사람처럼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때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던 여주댁은 딸의 웃음을 살펴가며 덩달아 입가에 웃음을 쿡쿡 찍기 시작했다.

한낮의 태양이 진석과 형식의 머리 위를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이나 좁은 뒷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건 똑 같았다. 이번엔 진석이가 앞자리에 앉아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다.

“너희 할머니께선 건강하시니?”

진석이가 무심결에 목을 뒤로 힐긋 돌렸다간 앞으로 당겨왔다. 사실은 ‘너 결혼했다던데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묻고 싶었다.

“소원을 풀더니 백년은 더 사실 것 같으신가 봐요.”

지금도 할머니의 속을 다 뒤집어놓고 있는 주제에 형식은 속은 것만 되씹으며 툴툴거렸다.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는 건 절대로 아니었지만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불며 학동으로 달려갔던 것을 생각하면 공연히 억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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