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단위 이야기
국제단위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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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오 (진주기상대장)
세월이 가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수백년 동안 사용하던 단위도 현대화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일기예보의 핵심인 기압을 나타내는 단위로 익숙하게 사용했던 밀리바(mb)도 사라지고 낯선 헥토파스칼(hPa)이 사용됐다. 지난해에는 평, 돈, 건 등을 강제로 폐지해 버렸다. 세계화의 물결로 싫건 좋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단위체계(SI)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아직도 마일, 인치, 파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수년 전에 미국은 단위체계의 혼란 때문에 미국우주항공국(나사)이 측량단위를 미터법으로 환산하지 않은 바람에 1억 2500만 달러(약 1500억원)짜리 우주선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사고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내려오는 습관을 바꾸는 일이란 그리 쉽지가 않다.

단위는 사물의 크기와 양을 수치로 나타내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사용자들이 합의만 하면 어떤 단위도 쓸 수가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단위는 국가의 통치수단이 됐다. 세금을 걷고 시장을 관리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통일된 단위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사회의 단위는 통치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트와 인치는 통치자의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서 결정된 단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10진법이 정착된 것도 중세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인도에서 처음 등장했던 영(0)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인정받기까지는 수백년의 세월이 흘렸다. 상품을 사고파는 교역에서는 표기의 편리함보다는 상품을 분할하기 쉬운 표기법이 더 일반적이었다. 약수(約數)가 더 많은 12와 20을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더 많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화폐단위인 파운드이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SI 단위이다. 프랑스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 기득권을 선정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국제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려면 자연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선택한 것이 지구였다. 지구의 크기를 근거로 길이의 단위를 결정하되 그 기본 크기가 사람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프랑스 지도자들의 합리적 결정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등장한 국민회의는 파리를 통과하는 자오선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량해서 4000만분의 1을 길이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고 실제 측정에 들어갔다.

미터는 측정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튼론(metron)에 해당하는 프랑스 단어(metre)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오선 전체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바다에서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육지로 연결돼 있는 파리 북쪽의 뎅케르크에서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법으로 측정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터법은 1799년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공포됐다. 훗날 나폴레옹은 ‘정복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터법에서 질량의 기본단위인 킬로그램도 물을 근거로 정의했다. 헥토파스칼도 미터법에서 유도된 압력의 단위이다. SI단위에서는 대략 1기압에 해당하는 1바를 10만 파스칼로 정의했다. 헥토는 100을 뜻하고 밀리는 천분의 1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국 헥토파스칼은 밀리바와 정확하게 같은 압력을 나타내는 단위인 것이다.

/박광오·진주기상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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