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8>
오늘의 저편 <78>
  • 경남일보
  • 승인 201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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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에게 한풀이를 하다 지친 화성댁은 이제 민숙을 붙들고 ‘아이고아이고’ 미친 듯 통곡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미도 데려가라고 하며 악을 써댔다.

‘페니실린!’

별안간 형식이는 벌떡 일어났다. 정말 페니실린만 있으면 민숙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읍내의 한약방에 가면 페니실린 주사약이 있을 것이었다.

‘다 죽어가던 철주가 살아났어!’

희망에 들뜬 얼굴로 자전거에 올랐다.

“아버지, 저 이제 걸어가겠습니다.”

민숙은 다리를 아래로 길게 뻗으며 아버지의 등에서 내리려고 했다.

“아니다. 이 아빈 이대로 무척 좋구나.”

“허리 아프실까 봐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괜찮대도 그러는구나.”

“제가 안 괜찮습니다.”

민숙은 억지로 땅에 내려서고 말았다.

서운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등을 보이며 돌아서더니 말없이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민숙이도 반사적으로 따라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거리는 벌어지기만 했다. 목청껏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한 조각도 없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가물거리기 시작할 때 민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그를 불러댔다.

“민숙앗!”

진석이가 먼저 민숙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년아, 어미다. 알아보겠냐?”

딸이 눈까지 뜨는 것을 본 화성댁의 눈도 어지간히 커졌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죽은 내 딸이 살아났다고 신나게 떠들다간 천지신명 전에 감사하다고 절을 수십 번도 더 해대며 감격의 눈물을 뿌렸다.

“오, 오빠 가지 마.”

허연 박처럼 다가왔다간 금방 사라져가는 진석을 보며 민숙은 양팔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눈을 크게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 민숙아, 나야. 오빠가 왔어.”

민숙의 손을 꼭 잡아주는 진석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이년아, 어미가 졌다. 자릴 털고 훌훌 일어나기만 하면 진석과 짝지어 주마. 알겠냐?”

딸이 또 정신을 잃을까 봐 걱정이 앞선 화성댁은 딸년 귀가 번쩍 뜨일만한 소식을 얼른 털어놓았다.

대답대신 몸을 일으킨 민숙은 진석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어깨를 들먹였다.

민숙을 꼭 끌어안은 진석의 어깨도 사정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흥, 저렇게 좋은 걸 떼어놓았으니……!’

이제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듯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둘을 감정 없이 흘기며 화성댁은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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