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님들, 이제 그만 좀 하시죠
맹모님들, 이제 그만 좀 하시죠
  • 경남일보
  • 승인 201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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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중국 한나라 사람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서 나오는 고사이다. 과부가 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공동묘지 근처에서 시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학교 근처로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어려서는 어버이를, 출가해서는 지아비를,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른다는 소위 ‘삼종지도(三從之道)’의 도리를 실천한 열녀의 감동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늘날도 이러한 맹모 정신을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명품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거처를 옮기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때론 범법행위인 위장전입도 서슴지 않고 행하기도 한다. 고위 공직자를 검증하는 청문회에서는 이 문제가 단골로 등장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심지어 아직 자기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어린 자녀를 외국으로 내모는 조기유학도 맹모따라 하기의 인기종목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부모들이 맹모보다 더 훌륭한 것은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에서부터 사교육의 열기를 키워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특히 입시를 앞둔 때가 되면 그 절정에 다다른다. 명문대에 보내기 위하여 수백만 원 때로는 수천만 원의 과외비를 지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는 자녀사랑의 시작에 불과하다. 돈이 없어도 자녀 결혼비용으로 수천 내지 수억 원의 돈을 지불한다. 결혼 후에도 자녀의 출산, 사업, 승진 그리고 손자·손녀의 교육 등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듯 맹모삼천지교를 뛰어넘는 지고한 자식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등골 빠지게 일해서 생활비 제외하고 모두 다 사교육 시장에 갖다 바쳐야만 하니 삶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 게다가 이 때문에 빚까지 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해도 명문대학은커녕 어지간한 좋은 대학 보내기도 쉽지 않으니 좌절감마저 든다. 나아진 경제력으로 여가를 즐겨야 하는 중·장년의 나이에도 계속되는 자녀 뒷바라지로 지쳐가기만 하니 인생이 행복할 리가 만무하다.

넘치는 사랑을 받는 우리 자녀들도 불행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모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서울의 초·중·고교 학생 수는 1000명당 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자들이 사는 명품학군 지역에서의 수치가 최대 50%나 더 높은 곳으로 보도됐다. 그 이유는 당연히 너무나도 과중한 공부와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잘되라고 큰 돈 들여 시키는 공부가 사람 잡는 셈이다.

대학을 졸업해 취업이 안 되도 부모가 다 보살펴 주니까 재수·삼수하면서 경쟁률 높은 최고의 직장에만 가려고 모두들 안달이다. 심지어 직장생활을 해도 부모가 돈 대주고 집 사주고 하니까 본인이 받는 월급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적은 월급임에도 불구하고 부모 등골 빼서 호사생활을 누리니 자긍심은 사라져 버리고 속빈 강정처럼 산다. 그러니 모든 게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만과 불합리성에서 오는 극심하고도 지속적인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자살로 이어진다. 이러다 보니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단연 최고이다. 특이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이 빈부격차도 없고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노인네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룹회장이나 유명인들도 거리낌 없이 제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잘 먹고 잘살아 보겠다고 산업화하고 경제부흥해서 만든 것이 겨우 자살공화국이란 말인가.

이제는 정말 우리가 아직도 열녀 맹모의 길을 가야 하는지를 되새겨봐야 한다. 어차피 극소수만 갈 수 있는 서울대 입학에 전 국민이 목을 매는 것은 바보짓에 가깝다. 내 스스로나 내 자식이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하더라도 평생 열등감 가지고 살 필요도 없다. 꼭 명문대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우리 맹자 어머니 노릇 좀 그만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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