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사천시민께 올립니다
존경하는 사천시민께 올립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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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경상대 명예교수, 진주포럼상임대표)

저는 산청의 산골마을이 고향입니다. 목이 휠 정도로 무거운 건어물을 이고 오신 삼천포 아줌마가 우리 집에 묵는 날엔 어머니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두 분의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른 새우나 김, 간이 된 갈치 한 토막을 어머니께서 반찬으로 주시면 진수성찬이 되던 유년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현재 사천에는 어업이나 농업으로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걸머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굳건히 살아가시는 사천시민 여러분을 제 어머니를 대하듯 저는 온 마음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요즘 진주와 사천은 자치구역 통합 때문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누구는 통합을 해야 서로 좋다고 하고, 또 누구는 한사코 통합을 반대합니다. 일부 지도자들은 진주와 사천이 통합하면 삼천포-사천이 그랬던 것처럼 갈등만 커지고 예산은 줄어들 것이며, 또 600년 지켜온 사천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고 말하며 서명을 가로막으며 시민들을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간고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걸머지고 어업으로 또는 농업으로 힘들지만 오늘도 묵묵하게 살고 있는 사천시민 여러분의 마음이 참으로 심란하실 것입니다.

서부경남은 역사 이래 한 생활권인데 80년 가까이 일곱 개로 쪼개져 지내면서 이제 작은 콩 하나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대립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부산, 울산, 창원, 마산, 김해, 거제는 이제 부촌이 되어 우리를 앞질러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지도 못하고 직장을 찾아 떠나보내야 했고, 인구가 줄었고, 국회의원도 줄고 급기야 12만 사천시민들은 국회의원을 아예 내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고향의 가치를 파괴하는 동향사람 서울MBC 사장의 몰상식한 자해행위로 진주문화방송마저 강제로 통합되고 말았습니다. 시쳇말로 이제 서부경남은 별 볼일 없는 동네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모두 우리 서민의 탓입니까? 활어시장에서 무릎 꼬부리고 앉아 회칼로 수 천 번 도마를 때리고도 나날이 가벼워지는 수입에 한숨을 지어야 하는 것도 모두 우리 책임인가요? 지도자들이 제대로 지역을 이끌지 못한 탓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경상대학교에 진학시켜 준 자녀들의 공부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서부경남 학생들의 가정형편이 다른 지역보다 어려운 현실이 화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서부경남의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으며, 그러다가 ‘서부경남 낙후요인 분석(1991)’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한 번 고치면 수십 년 내지 수백 년 가는 자치구역을 어떻게 해야 살 길이 생길 것인가 해서 ‘지방자치구역개편론(2006)’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진주와 사천이 통합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결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시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시야를 넓게 가지고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라도 한 번 읽어야 합니다. 두 지역이 가진 인재들도 묶고, 서로의 강점을 묶어서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힘을 모아야 남강 물과 민영화될 한국항공을 지켜낼 것이며, 잃어버린 국회의원 선거구도 되찾아 발언권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통합이 되면, 사천 시민들의 수도요금이 t당 317원 내릴 수 있는 등 하수도 요금, 쓰레기봉투 값, 교통요금, 자동차 번호판 값 등 줄줄이 내려갑니다. 어렵게 벌어 사는 시민 여러분들에게 이 돈은 큰돈입니다. 거기다가 공무원들도 통합 후 8년간 줄이지 않습니다. 시의원 수도 줄지 않습니다. 예산은 오히려 10년 간 2800백억 원을 지원해 줍니다. 사천이라는 이름은 진주와 함께 통합시 안의 행정구 이름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주민이익이나 유권자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이익부터 챙긴다는 것을 압니다.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세비부터 올리는 것 보셨지 않습니까? 지방의원들도 그들의 의정비 올리는 것 보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천의 공직자들이 진정으로 주민이익을 위해서 통합을 반대한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주민의 이익을 위해서 서명하는 주민들을 그렇게 위협하고 겁박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또 통합을 지지하는 대표의 참석을 한사코 막고 간담회를 무산시킨 일도 시민을 위해서였을까요? 그들을 보면서 사천과 서부경남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존경하는 12만 사천 시민들께서 직접 소신 있게 나서야 할 때라는 점을 감히 아뢰고자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 우리의 역사적 소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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