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체념한 얼굴로 뒷마당의 텃밭에서 가지 몇 개를 따곤 담벼락을 타고 올린 오이줄기에서 오이도 두어 개 땄다. 잡아줄 씨암탉이 없으면 비린 것이라도 한 마리 있었으면 좋았을까. 사윗감의 밥상을 차리면서 말라비틀어진 멸치 대가리 하나 올려놓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화성댁은 공연히 서러웠다.
햇살이 따가워지자 요란스레 짖어대던 까치도 그늘을 찾아갔는지 조용해졌다. 화성댁은 딸의 방문 앞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둘 다 늦잠에 푹 빠졌는지 도무지 일어나는 기척이 없었다. 깨우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돌렸다.
‘저리가. 퇴 퇴…….’
화성댁은 울며 지나가는 새까만 까마귀를 향해 침을 뱉으며 화를 냈다.
‘안 돼!’
앞뒤 없이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목을 짧게 흔들었다. 무당을 찾아갈 요량으로 주먹을 불끈 쥐곤 사립문 밖으로 나갔다. 꿈 해몽도 들어보고 상대 못할 흉몽이면 부적은 꼭 받아올 작정이었다.
지난번 그 점쟁이 집으로 가려다 화성댁은 곱사점쟁이가 있는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그 곱사는 자기 입으로 신통력이 다 닳아 빠져나갔다고 털어놓은 후 요즘은 점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곱사등이 무녀는 부적에 대한 신통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에게 받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닌 아랫동네 남자가 용케 징용에 끌려가지 않게 되면서부터 소문이 자자해진 것이었다.
‘순 돌팔이 같은 년, 남의 자식 운명을 함부로 지껄여대는 그런 년한테는 두 번 다시 안 간다. 안 가.’
지난번 그 점쟁이를 떠올리며 화성댁은 새삼스레 또 화를 벌컥벌컥 냈다. 그 소리 속에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이 푸덕푸덕 끓고 있었다.
까마귀 두 마리가 길가의 버드나무에 앉아 꽁지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짖어댔다.
‘이것들이 따라다니며 지랄이야?’
화성댁은 툴툴거리며 침을 연거푸 세 번 뱉었다.
“점을 치지 않은 지가 언젠데요…….”
머리에 허연 실을 잔뜩 인 곱사점쟁이는 화성댁과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럼, 어디 가서 물어봐야 하나? 꿈자리가 웬만큼 뒤숭숭해야지.”
화성댁은 가지고 간 보리쌀을 넌지시 펴놓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뭘 이런 걸 다! 꿈 풀이라면 그냥 봐 주기도 하는데.”
곱사는 곡식을 재빨리 끌어당겨 등 뒤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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