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설마, 그럴 리가’ 했더니 설마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난센스이고 어처구니가 없다. 진주시에 원로회의가 생긴다고 한다. 그것도 조례안이 시의회를 버젓이 통과했다. 원로회의는 명예직이 아닌 로마시대의 집정관처럼 시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된다니 옥상옥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법이나 복무규정 공무원의 책임과 의무 등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원로회의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미 설치되어 있는 각종 자문위원제도나 심의가구 외의 기능상 관계설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의회와의 기능상 구별도 확실해야 한다. 원로회의는 진주시 주요 정책의 수립과 변경, 시정 갈등요인 조정,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시책개발을 주요 역할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를 경우 원로회의가 결정한 사항을 의회가 심의한다면 의회는 원로회의의 상위기관이 되어 원로회의는 일반 심의기구나 자문기구와 다를 바 없다. 명칭만 원로이지 시정의 다른 기구와 차별이 없고 의회의 하위기관이 돼 원로라는 명칭이 무색해진다.
반면 원로회의의 결정이 최종 의사결정이라면 원로회의는 의회보다 높은 상원의 역할을 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도 시의회가 이 같은 조례를 의결했다니 자기 밥그릇을 내준 꼴이 됐다. 어쨌든 원로회의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로마시대에 원로원이라는 국가최고의 권력기관이 있었다. 종신 명예직이지만 집정관이 되면 직접 영토를 갖고 다스리기도 했다. 그래서 원로들은 자신이 대중연설을 할 때 부하들을 뒷줄에 세워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죽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했다고 한다. 오만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생각 같아선 나라에도 없는 원로회의라는 기구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생긴다면 다음 몇 가지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인구에 회자될 각오가 돼야 한다. 원래 원로란 높은 도덕률과 청렴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러러보기보다는 깎아내리기를 더 잘한다. 두 번째는 특정집단의 편에 서지 않고 바르게 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탐하고 청탁하고 간섭하면 원로답지 않다. 선거 때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캠프에 가담했던 사람을 배제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세번째는 ‘아니오’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자문·심의기구가 들러리를 서거나 결정사항에 대한 책임전가용으로 이용돼 온 것을 보면 원로회의도 그렇게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원로원도 공화정 때에는 제 몫을 했으나 제정기에는 황제의 전횡에 밀려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원로’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칫하면 선출직 출마처럼 집안내력은 물론 숨겨졌던 과거의 행적까지 모두 드러나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
차제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현역에 있는 원로급 인사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청년층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면 싶다. 진주시의 젊은 엘리트들이 시정을 젊게 만들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막힌 곳을 뚫고 소통하며 시정에 직접 몸으로 봉사할 수 있는 계층은 아무래도 원로보다는 젊은 층일 것이다. 원래 원로들이란 갈등을 해소하는 조정역할이나 잘못을 꾸짖어 나무라는 역할이 제격이다. 뒷전에 물러나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원로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설사 “당신이 원로회의에 참여해 주십시오”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자격이 없소”라고 사양해 원로회의가 아예 구성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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