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90>
오늘의 저편 <90>
  • 경남일보
  • 승인 201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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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를요?”

곱사등이 무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성댁은 그녀에게 크진 눈을 딱 맞추며 되물었다.

무녀는 은밀한 얼굴로 목을 끄덕였다.

‘머리에 먹물이 잔뜩 들어 있는데 남의 집 부지깽이를 훔쳐오려고 할까?’

집으로 향하면서 화성댁은 양미간에 주름을 모아댔다.

‘미신이라고 펄쩍 뛰겠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소리! 지금 미신인지 짚신인지를 따질 때야. 못하겠다고 하기만 해 봐. 내가 가만 두나?’

제바람에 흥분하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민숙이와 진석을 향하여 눈까지 마구 흘겨댔다.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민숙은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진석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해두고 있었다. 더욱이 보따리도 다 싸선 길 떠날 채비까지 야무지게 끝내두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세요?”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얼굴로 돌아오는 화성댁을 본 민숙은 반색하며 맞이했다.

“엉, 일어났어!”

화성댁은 멀쩡해진 딸을 보며 내심 싫지 않은 코웃음을 쳤다. 마음 같아선 부지깽이 이야기부터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우선 오이냉국에 밥부터 한술 말았다. 아무래도 잔머리를 좀 굴려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 오빠 지금 경성으로 가야 한 대요.”

민숙은 문 뒤에 숨겨둔 보따리를 집어 들며 함께 가겠다는 뜻을 슬쩍 비쳤다.

“어미 밥 먹는 거 안 보이냐?”

민숙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화성댁은 딸년 하는 짓이 여간 괘씸하지 않았지만 모른 채 밥알을 천천히 씹었다.

“죄송해요. 오빠가 바쁘다고 해서요. 조반 천천히 드세요.”

무안해진 민숙은 빨개지는 얼굴로 입을 쏙 내밀었다. 진석이와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년아, 그렇다고 이 어미 밥 먹다 말고 네년 등 떠밀어줄까?’

그러나 꾹 참고는 거친 보리밥알만 꾹꾹 씹었다.

해는 하늘 중천에서 빛살을 내뿜고 있었다. 갈 곳 없는 바람이 꼬리를 칠 때마다 땅의 열기가 훅훅 살아났다.

진석이와 민숙은 아직 학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진석이 갈 때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고 하며 텃밭으로 달려갔던 화성댁은 이윽고 둘을 방안으로 불렀다.

“더워 죽겠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면 안돼요?”

빨리 진석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고 있던 민숙은 마루 끝에 앉아 툴툴거렸다. 진석이가 앞장서서 들어가자 마지못해 뒤따라 들어갔다.

“딸자식 하나 있는 거 장날 남 장보러 가는데 딸려 보내듯 그렇게 아무한테나 보낼 순 없다.”

화성댁은 애매하지만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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