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91>
오늘의 저편 <91>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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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오빠 따라 갈 거예요.”

어머니의 마음이 변한 것만 같아 민숙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진석이도 좀 긴장한 얼굴로 화성댁을 보았다.

“자네가 우리 민숙일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네.”

화성댁도 긴장했다.

“어머니,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민숙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만 같은 얼굴로 화성댁을 보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진 진석은 민숙에게 어머니 말씀을 더 들어보자고 하며 화성댁 눈치를 살폈다.

딸과 사윗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뜸을 들이고 있던 화성댁은 이윽고 간절한 표정으로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빠한테 남의 부지깽이를 훔쳐오라고요?”

민숙이가 파르르 화를 냈다.

“아궁이 옆에 있는 거 그냥 가져오는 거지 부지깽이 하나 가지고 뭐 훔친다고 할 것까지야 없지 않니?”

예상하고 있었지만 벽에 턱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어머니, 점쟁이한테 갔다 오셨어요? 그래요? 점쟁이가 그러래요?”

민숙은 숫제 따졌다. 많이 배운 진석 오빠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강요하는 어머니가 여간 야속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점쟁이가 그러랬어. 그래야 네년이 복 많이 받고 살 수 있다는데 어쩌겠어. 이 어민 네년만 탈 없이 살 수 있다면 부지깽이 아니라 남의 솥단지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뎅겅 들고 올 수 있어. 남의 부지깽이 하나 가져와서 잘될 일을 왜 못하겠다는 거야? 왜?”

화성댁은 오기 받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아무리 그래도 진석 오빤 안돼요.”

정말이지 고고해 보이기만 하는 오빠에게 허무맹랑한 미신 따위를 믿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둘이 결혼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말도 안 돼. 그럼 제가 대신 가져올게요.”

“진석이 학생이 직접 해야 해.”

“어머니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오빠가 어떻게 남의 부엌에 가서 그런 걸 집어오겠느냐고요?”

“민숙아, 그만 해.”

듣고만 있던 진석이가 드디어 입을 뗐다.

“학생, 내 소원일세. 신통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점쟁이인데 그렇게 하면 둘이 평생토록 병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이제 화성댁은 진석을 붙들고 늘어졌다.

“하겠습니다.”

분명하게 말했다. 첫째는 화성댁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뜻을 그슬릴 수 없었고, 두 번째는 어이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비방이라도 해 두면 불현듯 불안감이 몰려올 때 스스로 위약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오빠! 고마워요.”

민숙은 감동의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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