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94>
오늘의 저편 <94>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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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밝은 그늘


<요컨대 삶의 법칙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었다. 이런 간단한 논리는 바보천치라고 다 알고 있는데 부모로서 어찌 자식한테 좋은 것을 심으려 하지 않겠는가.>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시간은 잘도 흘러 해방 일주년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왜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지독하게 행복한 착각으로 끝나고 있었다.

하기야 좋은 세상 그것이 목 빠지게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라면 모두들 대문 밖에 나가 목을 길게 빼고 있으며 될 터였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차근차근 일궈나가면서 억척같이 도전하곤 해야만 뭔가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작년 연말 미국·영국·소련 이렇게 덩치가 큰 세 나라의 우두머리들이 모스크바에 모였다. 심심파적으로 친목계를 하기 위해 모였다면 이제 갓 독립한 우리나라가 긴장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씨알맹이도 없는 해괴한 소리들을 마구 지껄여댔다.

한반도를 5년간 보살펴 주겠다는 것.

질퍽한 죽이 되던 고슬고슬한 밥이 되던 우리나라를 우리에게 맡겨두어야만 우리도 우리들만을 위해 진화의 꽃을 피울 기회라도 가질 수 있지 않겠던가. 언제부터 한반도를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세 우두머리의 도둑놈심보는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아도 너무 빤히 잘 보였다.

총칼을 든 껄렁패가 물러나고 나니까 기다렸다는 듯 폭탄을 든 깡패조직이 단체로 몰려오는 격이었다.

세상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다.

그러나 간신히 되찾은 우리의 주권을 마음대로 찢어발기려는 엿장수들은 외눈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나라가 혼란한 틈을 노려 소록도에 감금되어 있는 나환자들이 집단으로 그곳을 탈출했다. 그들에게도 해방의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었다. 세상으로 달려 나가 길거리를 활보한 자유도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벌레 보듯 했다. 가족들마저 집으로 찾아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갈 곳이 없어진 그들은 증폭되는 불만을 강도짓과 폭력 절도 등으로 해소하기에 이르렀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수도의 명칭을 새로 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경성에서 한성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옛 신라의 심장부였던 경주는 천년 도읍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였다. 번영의 물결이 찬란하게 흐르고 있었던 그때 경주는 서벌, 서나벌, 서야벌로 불리어졌다. 세계역사를 더듬어 보건대 천년동안 이어온 국가는 흔하지 않았다.

이윽고 오래토록 번영했던 서야벌에서 어원을 얻어 세세연년 발전만을 거듭하라고 수도의 이름을 서울이라고 칭하기로 정했다.

초가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진석은 올봄에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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