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97>
오늘의 저편 <97>
  • 경남일보
  • 승인 201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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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은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 끝에 큰 대자로 드러누웠다. 술 냄새를 푹푹 풍기고는 있었지만 천정을 보고 있는 그 얼굴표정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으신지요, 서방님?”

덩달아 정색을 할 수는 없어서 민숙은 일부러 장난스런 목소리로 반문했다.

“행복하니? 무조건 행복하다고 말해 줘.”

방으로 부축되어 들어가면서 진석은 술에 물든 붉은 동공으로 민숙을 빤히 쳐다보았다.

“불행하다고 하면 쫓아낼 거예요?”

“그으래.”

“어머! 그렇담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 수 없죠.”

“행복하다는 말이지?”

“그런가 봐요.”

“정말이지? 그렇담 되었어. 민숙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우리 둘만의 행복만 생각하면서 사는 거야. 알았지?”

“네, 잘 알았습니다요.”

민숙은 정말이지 무심결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좋았어.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약속했다.”

“에엣? 약속은 안했는데??.”

비로소 민숙은 남편의 말 속에 단단한 뼈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무엇일까? 설마? 안 돼!’

민숙은 머리를 짧게 흔들었다. 차라리 보이지 말았으며 좋았을 남편의 마음속이 너무 잘 보이고 있었다. 소름이 온몸을 싸늘하게 훑었다. 스스로 진맥한 것이 제발 오진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여운 녀석. 용서할 수 없어. 부모가 부모다워야지. 용서 안 해.”

진석은 몽롱한 정신으로 더 주절거리다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모다운 것이 뭔데요?”

속이 부대끼는지 양미간을 찌푸리곤 하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민숙은 혼잣말로 반문했다.

마루로 나온 민숙은 마당에 내린 달그림자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스레 둘만의 행복을 운운하지 않아도 행복한 나날이었다. 굳이 그런 말을 내뱉은 남편의 마음이 너무 잘 보이고 있었다.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것’ 그 이유까지 알고 있어서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

일요일 아침 여주댁은 아들네로 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시골집을 그대로 비워두고 서울로 와 딸과 함께 지내고 있던 차였다.

기생집을 정리한 동숙은 어머니와 함께 주단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 올케한테 너무 부담 주고 그러시진 마세요.”

옷매무새를 마친 여주댁이 민숙의 보약을 집어 들자 동숙은 걱정스런 얼굴로 볼멘소리를 냈다.

동숙은 도리 없이 시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좀 지나면서부터 줄기차게 제삿밥 떠놓을 자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며느리를 들볶아 대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돌덩이로 보이던지 씨받이를 직접 아래채에 들이기도 했다. 아들을 낳은 씨받이와 남편이 눈이 맞아버렸고 그녀는 그렇게 쫓겨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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