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 일상을 노래하다
삶과 사랑, 일상을 노래하다
  • 강민중
  • 승인 2012.05.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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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협 부회장 박종현 시인 두번째 시집 발간
더 이상 기억이 살 수 없는

시간도 길도 거기선 살 수 없는,

오직 수숫대 황토벽 너머 완숙完熟된 망각만

김칫독 가득 삭아가는,

내가 나기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지금도

대청마루 모서리 아홉 살 어머니 댕기머리 얼레빗질 하시던

박제된 메모리만 재생되는,

여든 아홉 살 하얀 소녀가

태어나 한번도 건너지 못한 사립문 밖

레테강 맑은 물살에 씻긴

징검다리가 다소곳 하늘로 닿아있는,

모든 기억들 삭제된 채

댓글만 살고 있는 어머니의



-치매 ‘어머니의 집’ 전문-

진주문협 부회장으로 지역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종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도서출판 경남·8000원)를 펴냈다.

첫시집인 ‘쇠똥끼리 모여 세상 따뜻하게 하는구나’를 펴낸 지 12년만이다.

박 시인의 시집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는 제1부에서 박 시인의 시적 지향점이 잘 드러난 시들로 실었으며 현실적 삶에 대한 고뇌가 밴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2부에서는 ‘치매’ 연작들로 짜였으며 7년 동안 치매를 앓다 지난 해 돌아가신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노래한 시편들을 모아 실었고, 제3부는 시집 제목에서 짐작해 낼 수 있듯이 에로티시즘 경향이 짙은 시들을 실었다. 그리고 제 4부에 실린 시편들은 자연과 삶의 교감에 대한 내용을 담았으며, 제5부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담백한 서정으로 노래한 시들을 모아 실어 놓았다.

정동주 시인은 박 시인의 시집에서 ‘치매’ 시편들을 읽고 ‘빛과 어둠을 알게 하는 눈을 주셨고/삶과 죽음의 길을 알게 하는 마음을/ 높고 낮고, 옳고 그른 분별의 눈금을/뭐든 죽이지 말고 사랑하라는/사람의 도리를, 사랑을 알도록/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님의 우주여’라고 평했다.

그리고 박 시인은 머리말을 통해 ‘한동안 시가 나를 버린 적이 있었다./아니, 사람은 사라지고 시만 남은 세상에서/시궁창 냄새가 났다/시궁창에 빠질 뻔한 나를 견져올린 건/시가 아니라 어머님이었다/메주 냄새 밴 아득한 세월을 머리에 인 채/오밤중, 안방 문을 열며/나를 오빠라 부르시던/어머니의 박제된 기억이었다.’고 밝혀놓았다.

가족도, 맛도, 아픔도, 기쁨도 세상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머니에 대한 아픔을 절제된 감성으로 형상화시켜 놓았다는 점이 매우 돋보인다고 오하룡 시인은 평하고 있다.

한편 박종현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1992년 현대문학 추천(이형기 시인 추천)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중견시인이다.

마루문학 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진주문인협회 부회장, 경남문협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1회 진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삼현여자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문학소녀들에게 문학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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