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속의 현장교육 ‘다크 투어리즘’
어두운 역사속의 현장교육 ‘다크 투어리즘’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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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 교수)
성스러운 유적지만이 교육목적의 관광지가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역사현장은 더 기억하기 좋은 현장교육 장소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자는 망하는 길에 접어든 사람이며,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다시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홀로 코스트 박물관’ 입구에 쓰여 있는 글귀는 학살의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게 하는 말이다. 이 박물관은 유대인 대량학살을 뜻하는 ‘홀로 코스트(Holocaust)’의 아픈 역사를 고발하고 추모하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명소이다.

아픈 역사의 치유 장소 명소화



아픈 역사의 교육현장인 ‘홀로 코스트 박물관’에 가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속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독일 기업가인 ‘오스카 쉰들러’가 나치수용소에서 처형당할 운명에 처한 유태인들의 목숨을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그가 사망한 후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1200명의 유태인 생존자의 실제 원본이 친구집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원본이 든 가방 안에는 당시 목숨을 구한 유태인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쉰들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들도 들어 있었다.

이러한 극적인 이야기는 ‘아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기증돼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이 박물관은 400만 명이나 학살당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함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유명하다.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살아 있는 생체실험, 가스실, 처형대,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신발, 옷가지 등에 이르기 까지 잔학상에 치를 떤다. 그리고 ‘ 쉰들러’에게 보낸 생존자들의 감사편지 속에서 생명존중의 역사를 공부한다.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 역사현장이나 엄청난 재난이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관광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역사교훈 여행인 셈이다. 한국전쟁 전후 수만 명의 양민이 희생된 제주 4·3 평화공원, 거제포로수용소 같은 곳은 ‘다크 투어리즘’ 장소이다.

우리 주변의 역사현장에도 그런 소재는 참으로 많다. 거창,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빨치산과 지리산 전투 같은 사건은 좋은 ‘다크 투어리즘’의 대상이다. 물론 일부의 장소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는 추모공원으로 조성됐다. 그러나 조성된 추모공원의 묘역은 넓기는 하지만 잔혹한 사건 속의 어두운 과거의 현장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기에는 부족하다. 전시관 속에서 만나는 사진이나 모형과 영상기록으로 역사현장의 절규와 비통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한마디로 잘 정비된 참배묘역과 부족한 내용의 전시관만으로는 현장의 역사를 되살릴 만한 명소가 되기 어렵다.

어두운 역사도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의 자원적 가치는 학살사건과 같은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현장을 제대로 되살려낼 때 살아난다. 현장을 고스란히 되살리는 작업은 현장에서 발굴된 유구의 작고 미세한 흔적들도 건져내 노출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학살의 증거를 끄집어내는 일은 부끄러운 역사이므로 감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도 끄집어내어 누구나 곱씹어 봄으로써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교훈을 찾는 것은 관광의 참된 기능이다.

어두운 과거여행 통해 새로운 역사로

관광은 여행의 경험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양식이다. 어두운 과거의 경험은 상처 입은 자나 죄악을 저지른 자나 노출시키기 꺼리는 아픈 상처이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환부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우리 모두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치유의 역사로 향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의 교육적 기능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치유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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