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99>
오늘의 저편 <99>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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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나고 있던 진석은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어머니 오셨어요?”

“그래, 학교 안가는 날이라고 마냥 늘어져 있었더냐?”

곁눈질로 아들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누이는 잘 있죠?”

누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너희들 얼굴이 왜 그 모양이니?”

대답 대신 여주댁은 아들 부부의 얼굴을 번갈아 핥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영 얼굴이 까칠해 보였고 아들은 밤새 통곡이라도 한 듯 퉁퉁 부어 있었다.

“참 어머니도, 저희들이 뭐 어떻다고 그러세요?”

진석은 일부러 말꼬리에다 웃음까지 매달았다.

“아가 너 혹시!”

며느리의 얼굴에 눈을 딱 고정시킨 여주댁은 눈가의 기미를 발견하곤 별안간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어머니, 엉뚱한 상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눈빛을 재빨리 읽어낸 진석은 설익은 그 꿈을 뜸이 들기 전에 잘라버리듯 잔인하게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이 어미가 무슨 몹쓸 생각이라도 한다는 거니?”

직감적으로 아들의 마음이 느껴진 여주댁도 발끈했다. 아들의 성격이 잘 익은 홍시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참에 그 기부터 좀 꺾어놓아야 했다.

“아,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답답해진 진석은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눈앞으로 보이지 않는 의식의 절벽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필중이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진석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을 짓씹어야 했다. 매일 필중이의 집을 찾아갔고 온갖 소리로 설득작전을 펼치곤 했다. 주제는 나환자에 대한 정의 즉 한마디로 재수가 더럽게 없는 사람일 뿐 사회악을 조성하는 부류가 절대로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충격으로 꽁꽁 얼어붙은 녀석의 마음은 녹을 줄 몰랐다.

급기야 어제 진석은 마지막 카드를 내밀 준비까지 하고 녀석을 찾아갔다. 그랬다.그는 자신의 아버지도 나환자였다는 끔찍한 사실을 녀석 앞에 까발릴 작정이었다. 공통분모의 소유자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놈 어딜 간 거유? 내 손자 좀 찾아줘유. 이 늙은인 무슨 낙으로 살라고……. 필중아, 이 할미 너 없으면 못산다. 어서 돌아와. 응?’

녀석은 기어이 가출해 버렸고 노파는 실성한 사람처럼 초점 잃은 멀건 눈을 두리번거리며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녀석에게 혼란에서 헤어날 시간을 주어야 했어. 어디서 방황하고 있을까?’

갈 데라고 학교와 집밖에 없던 녀석이었다. 바쁜 시간에 쫓겨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던 녀석이었다. 진석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했는데 줄기차게 들락거리면서 부담감만 준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무슨 일이냐? 말해 보거라.”

아들 꽁무니에 따라붙으려던 여주댁은 별안간 며느리에게 목을 돌려 목소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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